둘째를 낳게되다니. 내가. 그렇게 아이를 싫어하던 20대를 지나, 그 끝에 첫째를 낳고, 지금은 둘째까지 품고있다.

첫째를 낳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진짜 엄마가 되는건지 채 실감이 나지 않을 때, 호기 반 뿌듯함 반으로 이렇게 얘기했더랬다. 나는 아이에게 살면서 안되는 것도 있다는걸 알려주는 엄마가 될거라고. 세상에 나가서 쓴 맛을 보고 좌절하기 전에, 집에서 좌절의 맷집을 키워주겠노라고. 정말 뭘 모르고 한 철없는 생각이었다.

아이를 만 3년정도 키우고 나서, 이제야 겨우 초보엄마 딱지를 뗄랑 말랑 할 년차가 되고서야, 험난하고, 알 수 없고, 그래서 설레는 ‘육아’라는 세계를 고개 들어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이가 느끼는 좌절감’에 대해서도 태도가 정 반대로 바꼈다. 바깥에서 어차피 받을 좌절감, 집에서는 느끼지 않게 해주자! 로 ㅎㅎ
“오늘 유치원에서 리니한테 놀자고 했는데 리니가 Lass mich!라고 했어.”
유치원에서 친구가 혼자 놀겠다고 했다고 속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친구한테 가끔 혼자 놀고싶다고 얘기하잖아.’가 아닌, ‘같이 놀고싶었는데 친구가 혼자 논다고 해서 슬펐구나.’라고 대답 해 준다.


첫째를 낳기 전의 다짐이 그랬다면, 둘째를 낳기 전의 지금 내가 하는 다짐은 이렇다.

‘둘째는 첫째랑 다르다. 각자의 개성을 찾아 내가 누구인지 자아를 찾는데 도움을 주자.’

누구나 자아를 찾는 시간을 거치지만, 나는-혹은 대다수의 한국 젊은이들은- 그 시기가 청소년기가 아니라 대학에 가고 난 이후였다. 사춘기때는 공부라는 지상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고 뭐고 제대로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한참을 ‘내가 누구인지’를 찾으려 고군분투 했다. 아직도 문득 새로운 나를 인지하기도 하고.

나를 찾는게 어려웠던, 혹은 그 시간이 너무 늦게 찾아왔던 이유 중에 하나로, 나는 엄마의 말들도 꼽고싶다. 세 남매를 키워낸 우리 엄마는 밥상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이거 시금치 너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잖아.”
....?? 네에? 저기요? 엄마 딸은 30대 중반인 지금도 파는 걸러놓고 국 먹을 정도로 채소 편식쟁인뎁쇼???
내가 저 말을 실시간으로 들었던 때에도, 참 어이없었다.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니까. 그리고 엄마는 저 레파토리를 끊임없이 써먹었다. 어제가 시금치 였다면, 오늘은 콩나물 무침인 식으로.

채소를 좀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겠지만(설마 채소를 좋아했던 둘째와 나를 헷갈렸던건 아니라고 믿고싶다), 나는 잠깐이라도 내가 좋아하는것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시금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림 그리는걸 못 하는건지 못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지 못 듣는지도 잘 모르겠는, 스무살이 되었다.


둘째의 성별은 꽤 일찍, 임신 12주 차에 알게되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에게서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론 내심 딸이길 원했었구나를 진료실에서 깨달았다. 뒷통수를 맞은듯한 띵 한 느낌이었으니까.

진료를 마치고 차분히 있으니, 웃기게도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둘째에게 정말 좋은 징조였다. ‘둘째는 첫째랑은 완전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첫째와 같은 성별이었다면, ‘첫째가 이랬으니 둘째도 이렇겠지’하는 선입견으로 육아 초반을 채웠을 것 같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둘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성별이었고, 그래서 초보 엄마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설렜다. 가보지 못한 옆나라 육아를 경험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라고 쓰고 좀 울어본다 😂)


두 아이의 예비 엄마로써, 둘째를 돌볼 때 첫째때 만든 내 색안경을 좀 벗어둘 것을 다짐한다. 사소한 행동부터, 장난감 취향, 음식 취향까지. 나도 아니고, 첫째도 아닌, 둘째만의 개성을 존중 해 줘야지.

'독일에서 _ > 아이 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아이 친구관계를 엄마가 만들어줄 순 없잖아  (0) 2020.10.22
육아 금수저  (0) 2020.03.01
생일의 달 2월  (0) 2020.02.24
낮잠 끊기  (0) 2020.02.18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0) 2020.01.22


친구 관계. 요새 딸의 화두다. 아닌가 나의 화두인가.
‘오늘 말로가 나랑 안 놀아줘서 슬펐어.’
‘리니가 나는 자기 친구 아니라고 해서 화났어.’ 등의 말로 오늘 유치원에 대한 평을 한다. 혹은 나에게 그 말이 딸의 기분의 모두인 것 처럼 마음에 돌이 되어 얹힌다.

독일 엄마 커뮤니티에도 어제 같은 재질의 글이 올라왔다. 다섯살 된 여자아이인데, 친구에게 너랑은 이제 안 논다는 말을 듣고와 너무 속상해 한다고. 근데 그 앞에서는 웃으면서 운다고.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생긴 나의 모난 마음들이 딸에게 투사된다. 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된다. 여기가 내가 나고 자란 나라라면, 그래서 나도 좀 밝은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다면, 이런 작은 소외는 좀 쿨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그런때가 있다고, 그러다 다음날이면 또 같이 어울려 논다고. 그러다 베프가 바뀌기도 하고 한다고. 선배 엄마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한결같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리니도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속상해한다고 얘기도 듣고, 심지어 말로도 우리 딸이 오늘 자기랑 안 놀아줬다고 하고.

커뮤니티에 댓글로 여러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 의연하게 대처하기 : 부모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아야 아이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 엄마도 친구 사귀는건 어렵다고 이야기해주기
* 그 친구들은 우리 딸이랑 못 놀아서 아쉽겠네! 하고 역으로 생각해보기. 이 얘기한 아빠, 자존감 최고!
* 나의 나빠진 기분을 바로 표현하기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다른 문제들도 떠올랐다.
* 친하게 지내는 베프가 없다는게 문제가 될 수도 있구나 : 그 반에 베프를 만들지 못해 반을 바꾸는걸 제안했다는 유치원 선생님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이라면 문제도 안된다.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친구고, 생일파티에도 반 친구 모두를 초대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만 네살부터 자기 친한 친구 네다섯에게만 초대장을 보낸다.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생파 초대장을 못 받는다면... 그건 치유가 가능한 마음의 상처일까. 나같으면 카드가 없는 사물함을 본 그 순간부터 복수의 칼을 갈았을 듯.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네 살은 너무 빠른거 아니야?

네 살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엄마는, 독일에서 이 시기를 보내는 딸에게 어떤 응원을 해야 할 지. 여전히 좀 막막하다.

'독일에서 _ > 아이 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성을 존중하는 엄마가 되기  (2) 2020.12.09
육아 금수저  (0) 2020.03.01
생일의 달 2월  (0) 2020.02.24
낮잠 끊기  (0) 2020.02.18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0) 2020.01.22

재택근무가 한 달에서 두 달로 넘어갈 무렵. 커피를 끊었습니다. 한번에 확 빼는 다이어트가 효율적이라는 이론에 대입해, 어느날 그냥 커피를 끊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 후, 점심 후 내려 마시던 커피는 디카페인 커피로 대체했습니다.
사흘은 정말 비몽사몽이었습니다. 첫 날은 남아있는 카페인 탓인지 그럭저럭 흘러갔는데 이틀째 되는 날, 점심을 먹자마자 식탁에서 졸기 시작합니다.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침대에 쓰러져서는 내리 두 시간 낮잠을 잤습니다. 셋째날인 그 다음날은 오전에 한시간 반 낮잠을 잤습니다. 보통은 여섯시에 아이와 같이 일어나도 하루를 곧잘 지냈는데, 그 날은 여덟시에 남편과 육아 교대를 하고 꿀잠을 잔거죠. 재택근무 할 때 커피를 끊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고 나니 마치 카페인 디톡스를 한 기분입니다. 그 전엔 깨어있어도 집중이 잘 안 된다고 느낄 때가 왕왕 있었는데, 이제는 나의 순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느낌입니다. 잠이 늘어서 내 절대적인 시간은 줄었지만, 시간을 아껴 사용하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말은 아닙니다. 잉여의 기분을 충분히 느끼며 시간을 보냅니다.

'독일에서 _ > 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설계사무소 _ 재택근무 1, 2일차  (0) 2020.03.19
포크로 라면먹기  (2) 2020.01.30
쉬고싶다  (0) 2020.01.28
오늘 아침 기분이가 좋았던 일  (0) 2019.08.09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0) 2019.07.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