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제일먼저 한 일은 작업 할 장소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회사에서 50%로 일을 하고있는지라 정식으로 개인 일을 시작할 수는 없지만, 작업실에서 찬찬히 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넷으로 공고을 보고, 한 일이주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녀보더니 맘에 드는 곳이 있다며 저에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처음 저의 반응은 ‘으응... 그래, 좋네’ 였구요. 붉은색 테라코타 바닥과 하얀색 벽을 가진 오래된 건물 땅층에 자리한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쉐어오피스라 합니다.

주인과 얘기를 해 봤는데, 자기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좋아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책상과 의자를 가진 쉐어오피스가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의 취향이 모여 완성되는 작업실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그 취향 중 하나가 남편의 것이 되는거구요. 총 다섯개의 책상 중 하나를 임대하는건데, 훗 날 자기가 그 다섯개의 책상 모두를 쓰는 (큰) 사무실이 되는 꿈도 얘기합니다. 부엌 겸 식당방은 거실처럼 안락하게 꾸밀 계획이라고도 합니다.

남편은 달떠있습니다. 이렇게 맘에드는 장소가 흔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올 수 있는 개인 작업실이 있으면 독립 건축가가 되는 준비도 차근차근 할 수 있을 거라구요. 그 부분은 동의하지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좀 앞선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듭니다. 하지만 첫 시작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결재(!)를 내렸습니다.

남편은 이제 개인 작업실이 생겼습니다!

작업실은 아이의 어린이집과 제 회사 중간에 위치합니다. 주거지역이지만 교차로에 있어 왕래가 제법 있는 길가입니다. 건너편엔 다른 건축사무소와, 광고회사도 이미 자리하고 있구요. 매력적인건, 남편 책상 바로 옆에 방 높이만한 큰 창이 있다는겁니다. 책상에 앉으면 대각선으로 가을이 폴폴 느껴지는 나무들 뒤로 교회 지붕이 살짝 보여요.

아직 책상도 의자도 없는 사무실입니다만, 누가 만들어 놓은 곳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간다는게, 어찌보면 지극히 건축가스러운(!) 방법인 것 같기도 합니다.

통장에 월급이 채 꽂히기도 전, 엄마로써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타이밍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밤 사이 아이가 열이 났던 것.


사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엄마'라는 타이틀이 회사에 적응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대화를 매끄럽게 끌어가는 재주가 없는 나에게 아이는 적절한 주제였다. 내 소개를 좀 더 하다보면, 졸업은 작년에 했는데 왜 이제서야 일을 시작하느냐는 질문이 도출된다. 그럼 아이가 하나 있고, 딸이고, 나이는 한살 반이고, 같이 졸업논문을 쓴 후에 일년동안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고까지 물 흐르듯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동료들 대부분은 티는 안 내지만 꽤 놀라는 눈치였다. 놀랄만도 하지. 이제 일을 시작하는데 애가 있는 케이스가 독일인들에게도 많지 않은데, 외국에서 공부하겠다고 왔다는 사람이 그 공부가 이제 막 끝났는데 애가 있다고 하니. (여기 사람들에 비해 동양인들은 어려 보인다는 것도 한 몫 한 것 같고. 내가 그래 보였다는게 아니라...) 아무튼 내가 엄마라는걸 알게되면 대화가 끊겼을 때 다시 시작하기는 엄마이기 전 내가 겪었던 것 보다는 쉬웠다. 아이 어린이집 얘기, 언어 얘기, 사춘기가 온 너희 애 얘기, 아이와 휴가 보내는 얘기, 날씨와 감기 얘기...


그리고 엄마라고 하면,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신입으로 들어 온 느낌이랄까.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어제까지만 해도 학생인 애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동지애를 공유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은. 뭐 어디까지나 느낌이 그랬다는거다, 느낌이.


애가 있는 학생이었던 시절이 지나고, 주부로써 1년을 보내고, 애가 있는 신입사원이 된 나는 회사에서 아주 날아갈 것 같았다.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육아는 진짜 넘사벽이다. 학업보다, 직장생활보다 비교 할 수 없을만큼 훨배 힘들다. (그리고 이 중에서 나는 아직까지 회사생활이 제일 쉽다.) 일년만에 써보는 프로그램과 전공 관련 머리가 이제 슬슬 적응이 되는가 싶을 무렵, 아이가 열이났다. 날이 급격히 추워지긴 했지만 어제 어린이집도 잘 다녀오고 잠도 잘 잤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어주는데 몸이 좀 뜨끈했다. 잠을 좀 덥게 자서 그런가 했는데 이미 열이 39도. 새벽에 깬 아이 뒤치닥거리 하느라 아직 자고있는 남편을 깨워 이 비보를 알렸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은 50%로 일을 한다. 9시에 출근해 점심시간 없이 1시에 퇴근하는 직장생활이다. 이렇게 하기로 선택하면서 아이가 아프면 남편이 회사에 얘기해 아이를 케어하기로 말을 맞추긴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 계획이 현실로 닥치니 난감한 모양이다. 이번주 목요일은 독일 공휴일이라, 샌드위치데이인 금요일은 어린이집이 방학하는 날이다. 그래서 남편이 하루 휴가를 쓰기로 했었는데, 그 휴가를 어제(월요일)에 냈다는거다. (아니, 그 날 어린이집 방학이라고 얘기 한 지가 언젠데...) 오늘, 내일 아이 때문에 못간다고 회사에 얘기하면, 화요일부터 쭉 쉬고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게 되는건데, 하필 어제 금요일 휴가를 내 놓고 와서, 계획적으로 아이가 아프게 된 것 같은 뉘앙스라는거다. 그래서 내일 아이 열이 내리면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는지 물어보겠단다. (하이고, 어린이집 1도 모르는 소리 하시네.) 어린이집 전화해서 그 말도 꺼내기 전에 내일도 오면 안된다는 소리 듣고 시름에 빠져있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그럼 하루는 내가 회사에 못 간다고 할게.


나의 성취보다는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처음 회사를 골랐었는데, 지금이 또 한번 가족의 평화를 선택할 순간이야, 라고 생각했다. 사실 반은 기분 맞춰주려고 한 얘기였는데 남편이 그걸 덥썩 물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보다 규모가 크고, 그런 부분에서 좀 자유롭긴 하다만, 나 아직 첫 월급도 안 들어왔는데... 


회사에 출근해서 앞 자리 사수(?)에게 얘기했다. 아이가 열이 나서 내일 집에 있고 싶은데 팀장한테 얘기하면 되냐고, 일단 너한테 얘기하는거라고. 막상 말을 꺼내려니 좀 망설여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 질러버렸다. 그랬더니 팀장한테 얘기하면 된다면서 아이가 많이 아프냐고, 자기 아들 놀이방 애들도 다 아프다고, 이 날씨에 안 아플 애들이 없다는 무심한 듯 따뜻한 대답이 돌아왔다. 팀장(이자 임원단)은 너가 아픈걸로 등록을 하게 되면 간단하긴 한데 나중에 너가 아팠을 때 사용하지 못 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 해야하는건지는 알아보라는 대답을 들었다. 쿨하게 당연히 내일 안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자기는 한번도 써 본 적이 없다고 말을 덧붙이며 보인 어색한 웃음이 자꾸 생각났다. 모르는 부분이라 민망해서 그랬던걸까.


우리 층에는 남편처럼 아이 때문에 5-60%로 일하는 엄마가 두 명 있다. 그리고 이번주는 Baden-Württemberg주의 모든 학교가 방학이라 그 둘 모두 휴가.  80%로 일하는 아빠가 있어 물어보았다. 자기 부인은 집에서 일 해서 스케줄 조정이 자유로운 편인데, 미팅이 있어나 하면 자기가 시간을 내야한다고. 애가 아플 때 자기는 이렇게 했었다고 친절하게 얘기 해 줬지만, 자기도 딱 한 번 써봤다고 얘기하며 어색한 표정을 보였다. 잘 모르는 부분이라 민망해서 그랬던걸까.


비서아줌마 한테도 얘기하고나니 내일 일 하러 오지 않는걸 모두에게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그 중 누구도 결재권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소아과에서 진찰을 받을 때 아이가 아파 부모가 아이를 돌봐야하면 소견서를 써준다. 이것만 가지고 가면 원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 사수와 팀장이 같이 하는 프로젝트에 어제부터 내가 같이 하기 시작했던거라 오늘 작업 한 걸 사수와 얘기하는데, 사수가 자꾸 물어본다. 그래서 너 내일 안오는거지?

나는 독일 유학중에 임신을 했고, 부른 채로 수업을 들었고, 학기 막바지에 출산을 했다. 출산 후엔 교수님 미팅하러 유모차를 끌고 학교에 갔고, 아이가 학교 복도를 기어다니는 옆에서 졸업논문 발표를 했다. 모든게 계획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사실은 계획 거였다. 나는 아이와 나의 나이차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때가 괜찮은 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닥칠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없었을 .

식상하지만 사실이라 말하지 않고는 넘어갈 없는게, 많은 도움들이 있었기에 헤쳐나올 있었다. 가장 도움은 남편이었다. 물론 육아는 남편이 도와줘야 하는 아니라 같이해야 하는 거고, 내가 졸업할 있게 말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독일에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도움 없이 출산을 , 남편은 달의 육아휴직Elternzeit 냈다. 한국보다야 복지가 좋은 독일이지만, 그래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길게 내는건 그리 보편적이지는 않다. 특히 건축 설계분야에서는, 그리고 소규모 아뜰리에에서는 더더욱.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했고, 나는 졸업설계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임신했던 학기에 시작했으나 중간에 포기했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호르몬에 대항해 이기지 못했고,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던 날이면 아이에게 미안함이 든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다시 시작한 졸업설계의 목표는 만족할 결과가 아니라 졸업이었다. 학부 처럼 일을 새서 작업해놓고 발표 직전에 누구 들으라고 하는 투정이 아니라, 순도 100% 진심으로.

아이가 다행히 순했(과거형...)기에, 낮잠자는 때나 혼자 누워서 틈틈히, 그리고 남편이 퇴근한 저녁과 주말에 작업을 했다.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학기 중반쯤 모든 것에 허덕이며 지내던 중에 남편이 달콤한 얘기를 했다. 졸업 까지 금요일을 쉬겠다는거였다. 독일은 한국보다 휴가가 많다. 때가 졸업발표가 남은 시점이었던가, 수로 따지면 충분히 가능했다. 어차피 여름 휴가를 내도 어디로 놀러 가지도 못하는데. 하지만 건축설계분야는 또한 다른 독일 회사들에 비해 짜다. 소규모 아뜰리에에서는 더더욱.

남편은 마감 직전 일주일 휴가도 내서 힘을 모아주고 장렬히 회사로 복귀하셨다. 그로부터 한국으로 휴가를 가기 까지는 아이의 이유식과 나의 끼니도 담당하셨다. 한국에 가서 나는 처음으로 34 자유부인이 되었다. 그것도 아예 다른 땅으로 떠날 있는 자유를 가진 부인이자 엄마. 자유를 남편은 참으로 쿨하게 동의 주었다.

어제 남편은 12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 없이 아이와 둘이서만 보내는 밤은 처음이었다. 친구랑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워크샵이라는데, 나는 쿨하게 보내주지 못했다. 당연하지. 이틀에 주말도 하루 있으니. , 남편은 짐도 안싸고 나와 아이가 먹을 파스타를 만들고 국을 끓였다. 남편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아이는 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이 컸던거다. 그동안 육아의 힘듦이 1이었다면, 남편이 없으니 2 같았는데, 체감상 1.4 정도 였다. 아이는 미열이 있었지만 놀고 먹고 쌌다. 그리고 나는 나에대한 기대치를 줄였다. 밥은 있는거 먹이고, 힘들다 싶으면 애쓰지 않고 유투브 베이비시터님을 모셔왔다. 밖에서 시간을 보낼곳도 재미나 교육을 따지지 않고, 닿는대로, 아이 하는대로 내버려뒀다. 쓰고나서 보니 완전 남편 육아방식이다.

이제 육아의 두려움은 남편에게로 옮겨갔다. 남편 , 이제 육아의 책임이 자기에게 넘어온다고 막판에 버릇 나쁘게 들이지 말란다. 하루 그렇게 한건데, 잔소리를 한다. 역지사지다. 있음 본격 역할 바꾸기가 다가오는데, 나는 남편의 성취를 위해 나의 시간과 체력을 그렇게 떼어줄 수가 없을 같다. 퇴근 진심이 가득 담긴 위로 혹은 용기의 말을 충분히 전하는거, 그건 해줘야지.

'독일에서 _ > 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결심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0) 2019.03.09
행복하면 좋겠어  (0) 2019.02.27
작년 말미에는,  (0) 2019.01.03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외다  (0) 2018.09.25
커피와 날씨의 상관관계  (0) 2018.08.16

이전 글이 면접과 관련된 정보만 나열한 글이 된 것 같아 추가 글을 써보려합니다.




회의실에 들어가서 나에게 앉고싶은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이 사람,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앉으면 좋을 자리는 여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할텐데. 도데체 그 정답 자리는 어디냔 말이야. 동양적 수직관계 마인드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표현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그런데 만만치 않게 깐깐하다는거. 면접 시작하기도 전에 내 마음이 편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퀘스트부터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 추가요.


스펙쌓기 용이 아니었는데. 이 나이 먹도록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게 한심해서, 학업에 지쳐서 잠시 쉬기 위해 했던 일이었는데. 학생아르바이트생으로 얼마동안, 그리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인턴증명서는 안 봐도 된다고. 내가 뭘 했는지, 나름의 추천사도, 여기에 아주 잘 써있는데. 내가 안한 일을 했다고 뻥치고 있는거면 어쩌려고.


그래도 적어도 계약서 쓰기 전에 공신력있는 증명서들은 봐야 하는거 아니야? 내가 여기 졸업했다고 뻥치는거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쯧쯧.


졸업작품은 그래서 맘에 드냐고 묻는 질문에는 정말 당황했다. 아니, 나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사람으로써, 나를 어디에 써 먹을지 결정할 때 도움되는 질문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내 자존감까지 챙겨주시는 오지랖. 칭찬해.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내가 졸업작품 발표 하던 날에도, 오랫만에 만나는 독일 친구들은 그래서 만족하냐고 종종 물어보더랬다. 그 때야 끝나고 훌훌 털 수 있었으니 당연히 만족하지. 근데 사람이란 뒤돌아보면 후회하는 동물 아니었어? 나만 그렇니. 세상에 나온지 이제 반년 된 아이 데리고 졸업하는게 생각보다 쉬울리가. 목표를 졸업에 두고, 좀 눈에 밟히는 부분도 넘어갔는데. 그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해도, 다시 돌아가도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도, 그래도 어떻게 내 작품에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 설계사무소 면접은 한시간즈음에 걸쳐 보통 이렇게 진행됩니다.


1. 회사에 가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사람에게 이름을 대며 면접보러왔다고 말하기.

2. 회의실로 안내를 받고 음료를 제안받음.

3. 자리를 내가 골라서 앉음.

3. 면접자가 회의실로 들어와 인사(악수)를 함.

4. 자기소개를 하고 포트폴리오 설명을 함 + 질의응답

5. 회사에 대한 소개를 들음 + 질의응답

6. 언제까지 연락을 줄 지 날짜를 정함

(슈투트가르트 설계사무소들은 합격, 불합격 여부와는 별개로 면접을 본 후 내가 이 회사에서 일 하고싶은지 아닌지를 회사측에 먼저 알립니다.)

7. 회사 둘러보기.






1. 포트폴리오 설명하기


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건축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여기서 독일어를 배우면서 입학하기 전에 한 번, 학업중에 한 번, 총 두 곳의 설계사무소에서  Werkstudent(학생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그때도 독일어로 면접을 봤었기에 대충 어떻게 진행될지 감이 있었죠. 독일어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건 포트폴리오에 넣은 프로젝트 설명입니다. 어떤 프로젝트 설명을 원하는지는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 포트폴리오에는 석사 졸업작품이 있기에 그걸 가장 많이 준비했어요. 


준비란, 독일어 스크립트를 써서 여러번 집중해서 읽는겁니다. 간단하게 프로젝트 전체를 설명하면 인터뷰 담당자가 궁금한걸 더 물어봅니다. 생각치 못한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다양한 독일어 단어를 머리속에 가지고 있는게 좋겠지요. 그래도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졸업작품에 대해서 담당교수가 어떤 크리틱을 했는지' 물어봤을 때 제일 당황했어요. 그래서 생각이 잘 안나는데... 하고 운을 띄웠더니 그걸 기억 못하면 어떡하냐며. 그래도 뒤이어 이것저것 주워섬겼습니다 ㅎ


면접에 저는 제가 출력한 포트폴리오를 가져갔습니다. 한 부만 만들어서 면접때마다 가지고 다녔어요. 이미 메일로 제 포트폴리오를 보냈었기때문에 미리 출력 해 둔 회사가 두 곳, 제 포트폴리오를 같이 본 회사가 두 곳 이었습니다. 그리고 면접이 끝나고 두고 가겠느냐고 물어 본 회사가 한 곳 있었습니다. 포트폴리오 외에 졸업장, 성적표, 인턴증명서를 가지고 갔었는데 보자고 하는데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2. 회사에 대한 질문


저에겐 프로젝트의 만족감 보다는 일하는 조건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가 있어서도 그렇지만,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왠만한 프로젝트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을 잘 찾는 편이구요. 제가 면접시 꼭 물어봐야겠다고 적어놓은 것들입니다.


1. 월급

2. 근무시간, 휴가일

3. AiP 지원 여부


4.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

5. 내가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


월급과 근무시간, 휴가일, AiP 지원 여부는 슈투트가르트에 떠도는 기준이 있습니다. 회사 규모나 분위기에 따라 좀 더 주고 덜 주긴 하지요. 그리고 외국인 핸디캡도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관한 질문은 사실 렌더링을 내부에서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해 듣고싶어 우회적으로 물어본 질문이구요.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부서에서 일을 할 지, 어느 단계에서 일을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3. 엄마인 지원자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입견 없이 포트폴리오를 봐 주길 바랬거든요. 미리 포트폴리오를 훑어 본 한 회사에서는 졸업 후 약 일년의 시간이 있는데 그 동안 무엇을 했느냐 물어봐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는 곧 다른 회사들은 졸업 후 공백이 있었다는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얘기죠. 대신 다른 회사 면접에서는 일 시작할 수 있는 날짜를 얘기하면서 엄마임을 밝혔습니다.


거의 모든 회사는 자기 회사에도 젊은 엄마들이 있고, 아이가 아플경우 서로 얘기해서 쉴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일단 겉으로는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상이 어떨는지는 사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직접 듣지 않는 이상은 잘 모르지만요. 뉘앙스와 그 때의 분위기, 회사 전반의 느낌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야하는 부분입니다.






매우 유용했던 유투브 채널입니다. 


https://youtu.be/SDBcq_gYEbM


어떻게 월급 얘기를 꺼내야 할 지에 대한 독일어 팁 부터, 제안한 물을 마셔야 할지에 대한 소소한 조언까지 알아두면 은근 든든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대충 이렇구나 짐작할 수 있으면 독일어 면접에 대한 두려움도 좀 줄어들지요. 혹시 면접을 앞두고 있다면, 약간의 배짱을 가지고 가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사측에서도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자신들의 한 시간을 투자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추린거니까요.


제가 사는 슈투트가르트에는 설계사무소가 참 많습니다. 교수님들 말을 빌리자면 프랑스 전체의 설계사무소 수 만큼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가고싶다거나 잘 한다는 생각이 드는 설계사무소는 드물다는게 다수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학교 친구들에게 졸업 후 일하고 싶은 곳을 물어보면 많이들 스위스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저도 스위스를 가면 좋겠다고 상상은 해 보았지만 현실적인 이유들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직업을 구하기로 합니다. 하나, 남편의 일. 둘, 아이와 함께 이사함으로써 생기는 부수적인 일 들. 어린이집 자리 찾기, 아이와 함께 도시 적응하기, 이사할 집 찾기 등.



1. 회사 고르기


제가 지원한 설계사무소들은 아래의 조건을 충족합니다.


1. 집에서 가깝거나,

2. 아이 어린이집에서 가까울 것.

3. 그리고 프로젝트들이 너어어무 구리지 않을 것.


아이를 등원시키고 다시 회사를 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곳으로 지원했어요. 프로젝트의 매력도 항목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면접을 보고 난 후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회사의 실제 모습에 비해 홈페이지가 별로인 경우도 많거든요.


모집공고는 www.competitionline.com 에서 확인하거나,

대학교 벽보를 확인하거나,

사무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일이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공고가 없는 곳에도 지원을 했어요.


집 에서 어린이집 사이에 있는 사무실의 홈페이지는 모두 다 들어가 본 것 같아요.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들어가봤으니까요. 이렇게 시간을 들여 찾아보며 알게된 건, 슈투트가르트에 생각보다 매력적인 사무실이 많다는 거! 복지와 프로젝트 수준이 모두 괜찮아 보이는 곳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스위스 사무실인가 싶을정도로 멋진 곳도 발견했어요.


학교 벽에 붙어있는 모집 공고문들



2. 포트폴리오 보내기


모든 회사에 이메일로 포트폴리오를 보냅니다. 이 때 포트폴리오 용량에 제한이 있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있습니다. 10MB 제한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5MB, 2MB(여긴 지원을 결국 안함)도 있었습니다. 10MB와 5MB 포트폴리오를 각각 만들어 놓고 회사에 맞춰서 보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1. Motivation : 간략한 내 소개

2. CV

3. 프로젝트 4개 : 석사졸업작품, 스튜디오작품 2개, 학사졸업작품

로 구성했습니다.


메일 내용은 간단한 제 소개와, 너희 회사에 지원하니 첨부한 포트폴리오를 봐 달라라고 써 보냈습니다.



3. 면접 스케줄과 아이 스케줄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나서 1-2일 내에 답 메일을 통해 면접 날짜를 받았습니다. 면접 날짜는 메일 받은 날 기준으로 이틀 후 부터 열흘 내에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온 후인 저녁즈음의 시간을 주더군요. 퇴근시간 전이나 일에 휴식이 필요할 때 면접을 하나봐요. 이해는 되지만,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죠. 다른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 육아하는 입장에서 당장 아이를 맡길데가 필요해졌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얼굴이 아쉬움 가득 안고 떠오릅니다. 남편이 매번 일찍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친구들은 멀리 살거나, 아이 다루기 어색한 학생 아니면 직장인이고...


면접 날짜를 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걱정이 시작됩니다. 이 일이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의 복선 같기도 했어요.

해외에서 맞벌이 하며 아이를 키울 때 생기는, 내 선에서 적당히 처리하기 힘들 상황들이요. 회사에 아쉬운 소리 해야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면접시간을 조정 해 볼까를 제일 먼저 생각했습니다. 구글에 검색 해 보니,

1. 내가 아프거나

2. 아이가 아픈경우

가 아니고는 면접 시간을 따로 변경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이 역시 면접 보기도 전에 회사에 개인적인 요청을 하는게 싫어 조정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래서 총 네 개의 면접 중 

남편이 일찍 퇴근한게 한 번,

지인에게 맡긴게 한 번,

어린이집에서 늦게 픽업한게 한 번 이었고,

회사측에서 급히 면접 스케줄을 변경해야겠다고 연락이와서 협의 후 오전에 면접을 본 게 한 번 이었습니다.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취준생이었던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근데 육아 하면서는 또 다른 이야기더라구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볼때 내가 그렸던건 뿌연 이미지였다는걸, 직접 경험 해 보니 비로소 알게됩니다.


어렵고 힘들고 때론 무기력한 시간들이었지만, 당신과 나의 시간이 항상 그랬듯 뒤 돌아보면 꽤 잘 하고 있었잖아요. 지금 이 시간들을 좌절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애써 밝게 포장 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맥주 한 잔 하면서 기억이 떠오를 때를 위해 평가는 뒤로 미뤄요. 이 시간을 살아내는 당신이 그리고 내가 기특 할 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