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르깡 또르르또르똘똥똥. 불규칙한 워낭 소리를 내며 여나흔 마리의 흰 양들이 우리로 돌아간다. 어디서 흐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찬 계곡 물 소리도 들린다. 하긴 내가 있는 여기와 저기 양이 있는 곳 사이는 지척인 듯 보여도 바로 갈 수 없다.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기 때문이다.

양들 뒷편으로는 곧이어 깎아지른 절벽이 시작된다. 내가 해발 1030미터에 있고, 저 절벽 꼭대기는 3970미터니까, 거의 3키로 가까이 절벽을 올라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1885년부터 이 절벽을 통해 정상에 도달하기를 시도하다 2010년까지 60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지금 아이거 북벽 Nordwand 건너편에 있다.

저 위엔 눈이 있는데 나는 방금 해를 가리기위해 차양을 내렸다. 맨발로 발코니에 나와있지만 기분좋게 시원하다. 가끔 들리는 여기 아래 길을 지나는 버스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비현실적인 자연 안에서 매우 열심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는 그린델발트에서 차로 7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린델발트는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길목이고, 5년 전 우리는 융프라우요흐를 갔다왔다. 고로 무엇을 봐야한다는 부담감 하나 없이 여기 앉아 눈만 뜨고 있을 수 있는것이다. 산 중턱이라고해도 엄청 높을게 틀림없는 곳에 덩그러니, 하지만 유유히 앉아있는 저기 집 한 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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