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게되다니. 내가. 그렇게 아이를 싫어하던 20대를 지나, 그 끝에 첫째를 낳고, 지금은 둘째까지 품고있다.

첫째를 낳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진짜 엄마가 되는건지 채 실감이 나지 않을 때, 호기 반 뿌듯함 반으로 이렇게 얘기했더랬다. 나는 아이에게 살면서 안되는 것도 있다는걸 알려주는 엄마가 될거라고. 세상에 나가서 쓴 맛을 보고 좌절하기 전에, 집에서 좌절의 맷집을 키워주겠노라고. 정말 뭘 모르고 한 철없는 생각이었다.

아이를 만 3년정도 키우고 나서, 이제야 겨우 초보엄마 딱지를 뗄랑 말랑 할 년차가 되고서야, 험난하고, 알 수 없고, 그래서 설레는 ‘육아’라는 세계를 고개 들어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아이가 느끼는 좌절감’에 대해서도 태도가 정 반대로 바꼈다. 바깥에서 어차피 받을 좌절감, 집에서는 느끼지 않게 해주자! 로 ㅎㅎ
“오늘 유치원에서 리니한테 놀자고 했는데 리니가 Lass mich!라고 했어.”
유치원에서 친구가 혼자 놀겠다고 했다고 속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친구한테 가끔 혼자 놀고싶다고 얘기하잖아.’가 아닌, ‘같이 놀고싶었는데 친구가 혼자 논다고 해서 슬펐구나.’라고 대답 해 준다.


첫째를 낳기 전의 다짐이 그랬다면, 둘째를 낳기 전의 지금 내가 하는 다짐은 이렇다.

‘둘째는 첫째랑 다르다. 각자의 개성을 찾아 내가 누구인지 자아를 찾는데 도움을 주자.’

누구나 자아를 찾는 시간을 거치지만, 나는-혹은 대다수의 한국 젊은이들은- 그 시기가 청소년기가 아니라 대학에 가고 난 이후였다. 사춘기때는 공부라는 지상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생각이고 뭐고 제대로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한참을 ‘내가 누구인지’를 찾으려 고군분투 했다. 아직도 문득 새로운 나를 인지하기도 하고.

나를 찾는게 어려웠던, 혹은 그 시간이 너무 늦게 찾아왔던 이유 중에 하나로, 나는 엄마의 말들도 꼽고싶다. 세 남매를 키워낸 우리 엄마는 밥상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이거 시금치 너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잖아.”
....?? 네에? 저기요? 엄마 딸은 30대 중반인 지금도 파는 걸러놓고 국 먹을 정도로 채소 편식쟁인뎁쇼???
내가 저 말을 실시간으로 들었던 때에도, 참 어이없었다.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니까. 그리고 엄마는 저 레파토리를 끊임없이 써먹었다. 어제가 시금치 였다면, 오늘은 콩나물 무침인 식으로.

채소를 좀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겠지만(설마 채소를 좋아했던 둘째와 나를 헷갈렸던건 아니라고 믿고싶다), 나는 잠깐이라도 내가 좋아하는것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시금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림 그리는걸 못 하는건지 못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지 못 듣는지도 잘 모르겠는, 스무살이 되었다.


둘째의 성별은 꽤 일찍, 임신 12주 차에 알게되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에게서 ‘아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론 내심 딸이길 원했었구나를 진료실에서 깨달았다. 뒷통수를 맞은듯한 띵 한 느낌이었으니까.

진료를 마치고 차분히 있으니, 웃기게도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둘째에게 정말 좋은 징조였다. ‘둘째는 첫째랑은 완전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첫째와 같은 성별이었다면, ‘첫째가 이랬으니 둘째도 이렇겠지’하는 선입견으로 육아 초반을 채웠을 것 같다. 하지만 천만 다행으로 둘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성별이었고, 그래서 초보 엄마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설렜다. 가보지 못한 옆나라 육아를 경험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라고 쓰고 좀 울어본다 😂)


두 아이의 예비 엄마로써, 둘째를 돌볼 때 첫째때 만든 내 색안경을 좀 벗어둘 것을 다짐한다. 사소한 행동부터, 장난감 취향, 음식 취향까지. 나도 아니고, 첫째도 아닌, 둘째만의 개성을 존중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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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 요새 딸의 화두다. 아닌가 나의 화두인가.
‘오늘 말로가 나랑 안 놀아줘서 슬펐어.’
‘리니가 나는 자기 친구 아니라고 해서 화났어.’ 등의 말로 오늘 유치원에 대한 평을 한다. 혹은 나에게 그 말이 딸의 기분의 모두인 것 처럼 마음에 돌이 되어 얹힌다.

독일 엄마 커뮤니티에도 어제 같은 재질의 글이 올라왔다. 다섯살 된 여자아이인데, 친구에게 너랑은 이제 안 논다는 말을 듣고와 너무 속상해 한다고. 근데 그 앞에서는 웃으면서 운다고.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생긴 나의 모난 마음들이 딸에게 투사된다. 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된다. 여기가 내가 나고 자란 나라라면, 그래서 나도 좀 밝은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다면, 이런 작은 소외는 좀 쿨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그런때가 있다고, 그러다 다음날이면 또 같이 어울려 논다고. 그러다 베프가 바뀌기도 하고 한다고. 선배 엄마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한결같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리니도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속상해한다고 얘기도 듣고, 심지어 말로도 우리 딸이 오늘 자기랑 안 놀아줬다고 하고.

커뮤니티에 댓글로 여러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 의연하게 대처하기 : 부모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아야 아이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 엄마도 친구 사귀는건 어렵다고 이야기해주기
* 그 친구들은 우리 딸이랑 못 놀아서 아쉽겠네! 하고 역으로 생각해보기. 이 얘기한 아빠, 자존감 최고!
* 나의 나빠진 기분을 바로 표현하기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다른 문제들도 떠올랐다.
* 친하게 지내는 베프가 없다는게 문제가 될 수도 있구나 : 그 반에 베프를 만들지 못해 반을 바꾸는걸 제안했다는 유치원 선생님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이라면 문제도 안된다.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친구고, 생일파티에도 반 친구 모두를 초대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만 네살부터 자기 친한 친구 네다섯에게만 초대장을 보낸다.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생파 초대장을 못 받는다면... 그건 치유가 가능한 마음의 상처일까. 나같으면 카드가 없는 사물함을 본 그 순간부터 복수의 칼을 갈았을 듯.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네 살은 너무 빠른거 아니야?

네 살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엄마는, 독일에서 이 시기를 보내는 딸에게 어떤 응원을 해야 할 지. 여전히 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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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한 달에서 두 달로 넘어갈 무렵. 커피를 끊었습니다. 한번에 확 빼는 다이어트가 효율적이라는 이론에 대입해, 어느날 그냥 커피를 끊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 후, 점심 후 내려 마시던 커피는 디카페인 커피로 대체했습니다.
사흘은 정말 비몽사몽이었습니다. 첫 날은 남아있는 카페인 탓인지 그럭저럭 흘러갔는데 이틀째 되는 날, 점심을 먹자마자 식탁에서 졸기 시작합니다.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침대에 쓰러져서는 내리 두 시간 낮잠을 잤습니다. 셋째날인 그 다음날은 오전에 한시간 반 낮잠을 잤습니다. 보통은 여섯시에 아이와 같이 일어나도 하루를 곧잘 지냈는데, 그 날은 여덟시에 남편과 육아 교대를 하고 꿀잠을 잔거죠. 재택근무 할 때 커피를 끊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렇게 사흘을 보내고 나니 마치 카페인 디톡스를 한 기분입니다. 그 전엔 깨어있어도 집중이 잘 안 된다고 느낄 때가 왕왕 있었는데, 이제는 나의 순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느낌입니다. 잠이 늘어서 내 절대적인 시간은 줄었지만, 시간을 아껴 사용하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말은 아닙니다. 잉여의 기분을 충분히 느끼며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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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오피스 1일 차

학교 휴교가 시작된 다음날인 3월18일부터 회사에서도 공식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

아침에 출근해 홈오피스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팀원과 업무를 나누고, 파일들을 서버에서 내려받았다. 4 주 동안 학교가 쉬기 때문에, 홈오피스도 4주 후인 4월 18일 까지이다. 나는 이제 막 신입 딱지를 뗐기 때문에 팀장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2-3주 집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넉넉한 일감을 받았다.

점심에 남편이 아이와 차를 타고 와 컴퓨터를 운반했다. 오후엔 내가 아이를 돌 볼 순서라 저녁때가 돼서야 컴퓨터 전원을 켰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세팅이 아닐것은 짐작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제서야 회사에서 나눠준 지침들을 자세히 읽었다. 가장 중요한 캐드 프로그램 시리얼 번호를 겨우 찾아 입력했는데도 프로그램은 열리지 않았다. 첩첩산중. 일이란걸 언제 시작할 수 있으려나.

맥북프로를 곧 장만해야겠다고 마음이 굳었다. 앞으로도 종종 홈오피스 할 경우가 생길테니.


홈오피스 2일차

새벽같이 회사에 가서 못 가져온 파일들을 가져오려고 했다. 8시 10분 전에 회사에 도착했는데, 이미 층층마다 직원들이 있다. 다들 왜 왔냐는 반응.

회사에 내 컴퓨터가 없으니 오늘 오지 않을 확률이 제일 높은 사람의 컴퓨터를 켰다. 아, 그런데 마우스가 없잖아! 대부분이 홈오피스를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집에 들고갔나보다. 블루투스 마우스이니 다른 자리로 옮겨야 겠다.

아, 그런데 컴퓨터를 잘못 선택했다. 내가 쓰는 버전이 없는 컴퓨터다. 파일을 열어서 다른 확장자로 저장해서 가져가야 하는데, 다른 버전에서 열면 기존 데이터가 꼬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까지 오기에도 컴퓨터 담당자의 승인이 몇 번이나 필요했는데, 또 다른 컴퓨터에서 시도 할 수는 없다. 파일을 일단 그냥 가져가 보도록 하자.

집에서 외장하드를 가져왔는데, 뭔가 막혀있다. 지난번에 유에스비 가져왔을 땐 됐던 거 같은데, 내 기억력을 믿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씩 클라우드에 올리기로 했다. 작업파일 몇 개인데 업로드에만 40분이다. 조용히 커피를 내리러 간다.

최신 맥북 내가 사고야 만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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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금수저 : 부모님이 적극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나는 육아 흙수저다. 금수저를 너무 갖고싶은 육아 흙수저. 지난 한 주는 독일 학교들의 방학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워킹맘으로 60%만 일을 하는 동료가 도통 퇴근할 생각을 안한다. 이야길 들어보니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네 갔단다. 목요일에 돌아와서 그 전엔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었던거다. 그는 육아 금수저다.

독일은 아이 보육원 적응기간이 길다. 최소 2주에서 길게는 6주. (어떤 커리큘럼은 3일에 끝나기도 한다는데, 보거나 들은적은 없다.) 딸 아이는 적응을 곧잘 하는 편이라 이번 유치원 적응기간을 2주로 기대했었다. 나 4일, 남편 6일 적응기간을 같이 하는걸로 극적타결 했었는데, 중간에 선생님이 아파서 못 가는 날이 있고 하더니 3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온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적응기간동안 독일 부모들은 출근을 어떻게 해결하나 검색 해 봤더니,
1. 자기 휴가를 사용하거나,
2. 부모님 찬스를 쓴단다.

자기 휴가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곧 여름 휴가 대신 적응기간을 보낸다는 뜻 일거다. 중간에 이사를 가거나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초등학교 가기 전 까지 2-3년은 이 보육시설에 다닐테니, 2-3년을 위한 투자 쯤으로 생각하는 듯.

부모님 찬스를 쓴다는 댓글도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 아이 적응기간을 같이 보낸 아이 여덟의 보호자 중에 조부모는 없었다.

육아 금수저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금수저 가능성이 있던 곳에서 지 발로 걸어나와 흙수저를 자처한 나로서는, 짐작만 가능한 그 고충 대신 이 곳의 장점을 선택한거니까 할 말은 없지만 부러운건 부러운거다.

아픈 목 큼큼거리며 책 안 읽어줘도 되고, 밤에 잠좀 안 깨고 푹 잘 수도 있고, 집안 돌아다니면서 안 치우고 그냥 침대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테니. 진짜 아플 때 만이라도, 단 하루 밤 만이라도 육아 금수저 잠깐 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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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은 딸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유치원에 머핀을 좀 구워 보내면 땡이었는데. 그럼 유치원에서 노래불러주고 작은 선물 주고, 아이도 하루종일 생일자 대접 받으며 좋아하고. 그런데 생일 바로 전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오늘, 내일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독일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맞벌이 하는 집은 대략난감.)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일찍 퇴근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보고 출근하는데, 그제서야 내일 아이 생일인게 떠올랐다. 친구 하나 못 만나고 보내는 만 세살 생일이라니... 부랴부랴 연락을 해보니 당장 내일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딸 친구 한 명, 내 친구 한 명이다. 손님이 있으니 생파를 할 수 있겠어!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그대들 덕분에 딸랑방구가 정말 행복해 했어!!)

요리하고 머핀굽고 할 시간은 없다. 다 사서 공수하기로 한다. 남편은 슈퍼에서 달달구리를 사고, 나는 회사 끝나는 길에 케익을 사오기로 합의. 일퇴 후 집에서 딸랑방구를 데리고 데코 풍선을 같이 사러 다녀오는 계획까지. 딸은 오랜만에 버스도 타고, 자기 생일 풍선도 사서 너무너무 좋아했다. 파티를 준비하는 설렘도 덤. 그 날바람이 정말 엄청 불던 날이었는데, 헬륨 들어간 숫자풍선과 발레리나 풍선을 들고, 나중엔 딸래미까지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파 준비의 하이라이트였다.

생일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각자 하고싶은 것 하는 파티! 남편은 집 사무실방에서 업무를 보고, 아이들은 바닥에 도화지 펴고 그림그리고, 내 친구는 기타치고, 나와 딸램친구 엄마는 쇼파에 있고. 아이들은 원없이 초코렛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2주 후, 딸 생일파티 풍선의 바람이 다 빠져갈때 쯤. 딸 생일에 와 주었던 딸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주말에 집에서 하는 파티였다. 테마는 무당벌레. 벽에는 종이 무당벌레가 날아다니고, 테이블 위엔 3층 케이크 무당벌레가 등장!

그 다음날은 딸아이 예전 어린이집 친구의 생일맞이 키즈카페. 우리 말고 다른 친구 한 명이 더 오기로 했었는데, 감기때문에 못 왔다. 입장료는 각자 내고 점심은 생일자가 쏘는 심플한 생일파티. 둘이 원하는 놀이기구가 달라 엄마들이 좀 바쁘긴 했지만, 환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도 곧이다. 남편의 수준급 미역국을 또 맛볼 수 있는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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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네살의 시작이다.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다고 징징, 옷 안 갈아입겠다고, 양치질은 책 보면서 한다고 징징... 지금처럼 점심 먹기 전에 유치원 하원 해 집에 오는 날이면, 낮잠을 자지 않겠다고 또 한바탕 징징, 저녁잠도 자지 않겠다고 징징... 총체적 난국이다.

그래서 점심을 먹다가 충동적으로 오늘은 낮잠을 자지 말자고 했다. 주말에 엄마아빠와 놀다보면 가끔 낮잠을 패스하곤 했으니, 슬슬 뗄 때도 됐다는 생각에서다. 자기 싫어하는 애를 낮잠 재우려니 나도 힘들고, 한 번 낮잠들면 두 시간은 기본이라 저녁잠 재우는 것도 여간 힘든게 아니다. 낮잠을 자지 않고도 낮에 잘 버텨준다면, 낮에 기운 빼지 않고 저녁에도 금방 잠들거라는 큰 그림이었다.

역시나 낮잠을 안 자고도 낮에 떼를 많이 쓰지 않았다. 대신 컨디션이 안 좋은 엄마만 좀 자고, 아이는 홈오피스 중인 남편이 대신 맡았다. 노는데 ‘좀 졸리네’ 한 마디 했단다. 저녁먹고 샤워하고 책 좀 읽다보니 일곱시 반. 졸려하는게 눈에 보였는데, 그래도 한 권 더 읽어달란다. 마지막 책 내용을 듬성듬성 읽어주고는 침대로 데려왔다. 많이 졸린지 침대에 제대로 눕지도 않고 칭얼댄다. 내복바지 벗고, 기저귀 차고, 쪽쪽이 물고, 거의 바로 딥슬립. 오예!

지난달 까지 가던 키타에는 12시 반 부터 낮잠시간이었다. 이번달부터 가는 킨더가르텐에는 낮잠시간 대신 쉬는시간이 있단다. 만 세 살 이상의 어린이들만 있으니 낮잠은 대부분 뗐지만, 오후에도 풀 파워로 놀기 위해 1시부터 모든 아이들이 30분 동안 어두운 방에서 누워있는단다. 그 동안 잠이들면 일어날 때 까지 따로 깨우지는 않는다고.

낮잠이나 밤잠이나 사실 상관은 없다. 중요한건 아이의 충분한 수면시간. 그리고 충분한 양육자의 쉬는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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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의외로 꼭 지키는 것들이 있다. (물론 독일사람 전부가 그러지는 않을 거 라는거, 나도 안다.) 예를들면 ‘운동화는 운동할 때만 신기’라던지, ‘머그컵Becher에 차가운 음료 마시지 않기’라던지.

이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잘 안 온다.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 ‘포크로 라면먹기’

나는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니는데, 가끔은 집에 점심거리가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옵션 중 하나는 라면이다. 봉지라면. 회사에서 큰 길을 따라 1분만 내려가면 아시아마트가 있다. 거기서 라면 한 봉지를 사온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동시에 넓은 그릇에 면과 스프를 넣는다. 끓은 물을 그릇에 붓고 2-3분 전자렌지에 돌려준다. 중간에 한두번 저어주면 면이 골고루 익는다.

오늘은 평소 먹던 라면과 다른 라면을 골랐더니 너무 매웠다. 마실 물은 우리 층에 없어서, 우리 층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꺼냈다. 찬장에는 마침 큰 유리컵들만 있어서 용량이 좀 적은 머그컵을 골랐다.

이로써 동시에 2관왕을 달성했다. ‘포크로 라면먹’으면서 ‘머그컵에 찬 우유 마시기’. 날이 따뜻했으면 테라스에 나가서 도시 뷰를 감상하며 먹는건데. 그러면 기분은 더 더 이상해질거다. 지금도 충분히 멀티쿨티multi-kult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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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기사도 읽어야 하고, 독일어 작문도 해야한다. 요가도 틈틈이 해야하는데, 지난달에 간 신경외과에서 편두통을 없애려면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대서 압박이 더해졌다. 다음주는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이다. 그 전에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 작별파티도 해야하는데 이 역시 나의 몫. 생각 해 두었던 선생님과 아이들의 선물을 오늘 주문했다. 늦지 않게 오면 개별포장을 해야한다. 그리고 아이가 주문한 파인애플 머핀을 부족하지 않게 구워가야지. 아참, 그리고 한참을 업로드 하지 않은 내 유튜브 채널에 대한 죄책감과, 그것에 비례하지 않는 구독자 수 욕심도 있고. 꾸준히 글도 쓰고싶다.

이상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혹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할 것이라면,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빡빡하다. 나는 세 개 프로젝트에 속해 있는데, 그 중 둘은 지금 정신없이 건물이 올라가는 중. 하루에도 몇 번씩 프로젝트를 옮겨가며 급한 불을 끈다. 답변이 제깍 오지 않아 시간이 뜨면 틈틈이 세번 째 프로젝트 빔 모델링을 한다. 회사에서나마 나를 좀 돌보고 싶은데, 물은 지하에 있고 나는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라, 커피만 내려 마신다.

뿌얘지는 눈을 껌뻑거리며 오후 업무시간을 채운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는 이북을 읽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멍때리는 시간.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투를 바닥이나 화장실 세탁기 위에 벗어두고는 샤워가 끝난 아이의 뒷일을 맡는다.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게 이 퀘스트의 핵심. ‘싫다고~’ 노래를 허허 웃어 넘기면서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한다. 그 이후는 철저한 분업. 아이와 놀거나 저녁준비 하거나. 아이랑 놀거나 저녁상을 치우거나. 마지막 큰 산인 양치시키기를 넘으면, 이제 진짜 마지막. 잠 재우기.

오늘은 재우면서 같이 잠 들지 않았으니 반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미열이 있어서 잠에서 자꾸 깬다. 남편을 애 옆에 누워있게 하고, 요가를 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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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육시설 운은 정말 좋다. 내가 사는 슈투트가르트는 정말이지 보육시설 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내 직장에는 출산 후 일주일에 단 몇시간이라도 일을 하고싶어하는 동료가 있다. 출산 6개월 후 일주일에 며칠 출근하는가 싶더니, 다시 휴직에 들어갔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낮동안 아이를 맡아주셨는데, 아직 어린이집 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서 구할 때 까지 자기가 휴가를 내야 한다고. 또 다른 직장동료는 유치원 자리를 동네에 받지 못해 오후 네시에 차로 아이를 픽업해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 그런 도시에서 우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자리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았다.

어린이집에 보낼때는 내가 아직 학생이었어서 학생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자리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 원비는 일반 어린이집보다 좀 비쌌지만, 선생님들과 시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우리는 이사를 했고, 원래도 좀 멀었던 어린이집이(대학교 근처에 위치) 더 멀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30분은 가야하는 거리. 아이에게는 지하철 안에서 간식을 먹는게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이사갈 집이 정해졌을 때 부터 이미 이 동네 유치원에 지원을 했지만 10개월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지원활동(?)을 해야하나 싶을 때, 집 근처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를 위한 자리가 있다고.

전화를 받은 다다음 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등록하러 갔다. 그게 12월이었고,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2월에는 총 여섯명의 아이가 동시에 시작한다. 여섯 아이의 학부모와 아이 셋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 여섯명 중 두 명만이 어린이집에 다닌 경험이 있고, 만 네살이 넘도록 어떤 자리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유치원은 여러모로 어린이집보다 한 수 위였다. 어린이집 한 반 정원수는 10명, 선생님은 3명이었던데 비해, 유치원은 한 반 20명에 선생님 단 두 명. 어린이집에서는 그 세 명 중에도 우리 아이를 우선으로 담당하는 선생님 Bezugserzieherin이 한 명 정해져 있었는데, 유치원은 그런거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스스로 잘 맞는 선생님을 찾는다고. 적응기간도 다르다. 어린이집은 그 담당선생님과 나와 아이, 이렇게 셋이서만 며칠을 보냈었는데, 유치원은 바로 실전이다. 새로 들어가는 아이들 여섯이서 바로 합방. 가끔은 버스 타고 숲으로 소풍 가기도 한다고.

독일은 유치원부터 공교육으로 여긴다. 그래서 만 세살이 넘은 아이들을 필히 보육시설에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다양한걸 접하겠지만, 내게 특히 반가웠던건 언어교육. 이 유치원에는 일주일에 두 번, 오전에 언어선생님이 방문한다. 처음에는 반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다가, 언어가 부족한(독일 아이나 이중언어)아이들 다섯명을 데려가 따로 시간을 갖는다. 단어나 발음을 직접 고쳐주거나 하지는 않고, 아이가 잘못 얘기 한 부분을 선생님이 바르게 다시 이야기하는 정도. 그렇지 않아도 딸의 독일어가 좀 걱정돼서 '집에서 독일어 영상을 좀 보여줄까' 싶던 차에 잘 되었다. 집에서는 한국어만 열심히 해도 되겠어. 

한 시간 정도 정보와 질문 교환이 끝나고, 시설을 한 번 둘러보는걸로 오리엔테이션은 끝났다. 마침 아이들 픽업시간이어서 다니고있던 아이들의 부모들을 우연히 만났는데,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수업을 듣고있는데, 거기에서 알게된 부모들이다. 남편은 그제야 얼굴이 좀 폈다. 픽업하고 다같이 바로 체육수업을 가면 되겠단다.

오리엔테이션 내내 수줍어서 아빠랑만 놀던 딸아이는 어땠을까? 저녁 먹기 전에 무릎에 앉혀 물어봤다.

"오늘 킨더가텐 어땠어?"

"안 좋았어."

"안 좋았어? 계속 놀고싶었는데 조금만 놀고 집에와서 안 좋았어?"

"응."

"우리 한 열 밤 정도 자면 이제 매일매일 킨더가텐 갈꺼야. 근데 그 땐 키타(어린이집)는 못 가. 키타나 킨더가텐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어."

"나는 킨더가텐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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