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세 명의 건축가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 입니다. 독일의 전후 모더니즘 건축가로 제가 살고있는 슈투트가르트의 IBM 본사 건물을 설계했어요. 더 유명한 건물로는 베를린에 카이저빌헬름교회가 있습니다. 오래된 성당 바로 옆에 유리블록으로 된 육각형 타워형 건물이 있는거요. 빛이 통과해 들어오면서 파랗게 된 유리블록 배경에 예수님 상이 있는 실내 사진, 그거요.
에곤 아이어만은 동시에 가구디자인으로도 유명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시리즈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가구 또한 그의 건축 못지않게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면서도, 기능적이죠. (건축가 O.M. 웅거스의 선생님이었기도 합니다.)

둘째는, 제 남편입니다. 새로 임대한 사무실에 에곤 아이어만의 책상과 의자를 들여놓고 싶어하죠. 책상은 쉐어오피스의 주인이 가져다주기로 하고, 의자를 고릅니다. 공략하는 모델은 S 197 R 입니다. 엉덩이 쿠션도 없고, 팔걸이도 없습니다만 가격은 뭐가 좀 있네요.
다른 의자들은 썩 눈에 들어오지 않나봅니다. 결국 중고거래사이트에서 괜찮은걸 하나 찾아 의자를 보러가기로 합니다.

셋째는, 의자 주인 할아버지입니다. 의자를 찾아 간 집은 꽤 좋은 동네에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여러 건축적인 디테일들이 보입니다. 좀 아는체를 하니 주인 할아버지가 자기가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개인 서재 겸 작업실도 집 안에 있습니다.
의자는 자기 아들을 위해 샀던건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건축가의 응원과 함께 의자를 업어옵니다. 뭔가 지혜를 전달받는 느낌적인 느낌도 듭니다.

비어있던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들어오니, 자리가 벌써 그럴듯 해 보입니다. 혹은 그런 뿌듯한 마음이거나요.

남편이 제일먼저 한 일은 작업 할 장소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회사에서 50%로 일을 하고있는지라 정식으로 개인 일을 시작할 수는 없지만, 작업실에서 찬찬히 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넷으로 공고을 보고, 한 일이주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녀보더니 맘에 드는 곳이 있다며 저에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처음 저의 반응은 ‘으응... 그래, 좋네’ 였구요. 붉은색 테라코타 바닥과 하얀색 벽을 가진 오래된 건물 땅층에 자리한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쉐어오피스라 합니다.

주인과 얘기를 해 봤는데, 자기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좋아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책상과 의자를 가진 쉐어오피스가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의 취향이 모여 완성되는 작업실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그 취향 중 하나가 남편의 것이 되는거구요. 총 다섯개의 책상 중 하나를 임대하는건데, 훗 날 자기가 그 다섯개의 책상 모두를 쓰는 (큰) 사무실이 되는 꿈도 얘기합니다. 부엌 겸 식당방은 거실처럼 안락하게 꾸밀 계획이라고도 합니다.

남편은 달떠있습니다. 이렇게 맘에드는 장소가 흔히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올 수 있는 개인 작업실이 있으면 독립 건축가가 되는 준비도 차근차근 할 수 있을 거라구요. 그 부분은 동의하지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좀 앞선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듭니다. 하지만 첫 시작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결재(!)를 내렸습니다.

남편은 이제 개인 작업실이 생겼습니다!

작업실은 아이의 어린이집과 제 회사 중간에 위치합니다. 주거지역이지만 교차로에 있어 왕래가 제법 있는 길가입니다. 건너편엔 다른 건축사무소와, 광고회사도 이미 자리하고 있구요. 매력적인건, 남편 책상 바로 옆에 방 높이만한 큰 창이 있다는겁니다. 책상에 앉으면 대각선으로 가을이 폴폴 느껴지는 나무들 뒤로 교회 지붕이 살짝 보여요.

아직 책상도 의자도 없는 사무실입니다만, 누가 만들어 놓은 곳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간다는게, 어찌보면 지극히 건축가스러운(!) 방법인 것 같기도 합니다.

취직한지 한 달도 안됐는데 개업이라니 무슨 소리냐 하시겠지만, 이 포스팅 시리즈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남편입니다.

한국에서 CC로 같이 건축 공부를 했던 남편은 졸업 후 포트폴리오를 들고 스위스로 떠납니다. 그리고 독일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지요. 학부생 때부터 학업에는 뜻이 없던 남편에게 대학원 진학은 계획에 없었습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 미래를 위해(타이틀을 위해) 공부를 더 해야 하나 고민하던 때도 있었지만, 꾸준히 일을 해 지금은 독일 설계사무소 경력 7년차 독일건축가로 일을 하고있습니다. 

학업에는 정말 뜻이 없었지만, 옛날부터 사무실 개소에는 뜻이 많으셨습니다. 그 뜻이 독일에 왔다고 해서 꺾이지 않았고, 학생 때 같이 작업실을 쓰던 선배, 동기들이 사무실을 차리고 자기 설계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기도 가까운 미래에 사무실을 차려야겠다고 얘기하곤 했죠. 그리고 2018년 10월 드디어 그 미래가 현실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글로 옮기려 합니다. 제 3자도, 그렇다고 당사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요. 글은 발행되기 전 당사자의 검열을 거칠 계획이지만, 남편에게 가진 불만을 토로하는 장이 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어떤 부분에서 우리 부부는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위험요소(?)들이 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취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있지만, 사무실 개소하는데서 일어나는 일들은 속도도 빠르고, 규모도 커보이거든요. 물론 위에 말한 것 처럼 애매한 위치에서 이 사건을 보기 때문일 수 있겠지요. 당사자는 지금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저는 반 발짝 떨어져서 보니까요.

이 시리즈의 끝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행복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제부터 이 무모하고 두근두근한 길을 함께 가시는겁니다. 응원 해 주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