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 3일 전 목요일, 산부인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다. 예정일 한 달 전 부터는 2주에 한 번 산부인과에 가서 CTG를 보고, 초음파 또는 내진을 본다. 내 경우는 태아의 크기가 평균보다 작아서 그 즈음엔 출산 할 병원에도 정기검진을 보러 갔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한 셈이다.

그 날 오전도 여느 검진때처럼 부른 배를 내놓고 모로 누워 아기의 심박수와 수축정도 등을 재고있었다. 보통 40분 정도 체크한다. 연결이 좋지 않아 측정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중간중간 간호사가 들어와 잘 기록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런데 중간에 들어온 간호사가 치수를 보더니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의사를 부른다. 곧 들어온 의사가 보더니 응급차를 불러 출산병원으로 지금 가야한단다. 일반적 태아 심박수가 130-150 사이인데, 수치가 80 이하로 떨어진게 보였던거다. 언제나 차분하고 고상한 목소리의 의사선생님도 좀 긴장한 듯 보였으나, 그보다는 아이가 곧 나올 것이라는 기대섞인 흥분감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환자용 들것에 들려 나가는 나에게 친절한 웃음과 함께 걱정이 아닌 응원을 해 줬다.

통증도 없고, 양수가 터지거나 어디 불편한 것도 아닌데 나는 들것에 잘 동여매져 구급차에 태워졌고, 곧 출산할 병원에 도착했다. 피를 두 번 뽑고 CTG를 한 시간 정도 봤다. 중간에 아이가 잠들었는지 신호가 활발하지 않아서 아이를 깨운다며 레몬 오일을 한 방울 적신 천을 주며 코 밑에 대고있게 했다. 그래도 산부인과에서 봤던 것 같은 특별한건 보이지 않았다. 초음파도 보고 병실을 받았다. 그리고는 바로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별건 없었다. 오후에 알약 하나를 먹고 CTG 한 시간, 저녁에 또 알약 하나를 먹고 CTG 한 시간. 하지만 그날 밤 내내 통증이고 뭐고 아무 일이 없었다. 

아이가 나오면 남편은 두 달 동안 육아휴직을 내기로 했다. 그 말인 즉, 당장 내일이라도 아이가 나오면 남편은 더이상 회사에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침에 지갑만 들고 산부인과를 갔다가 그 길로 입원한 나를 따라, 남편도 회사일을 제치고 서둘러 와야했다. 유도분만 알약을 먹었지만 정말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걸어서 5분거리인 집에 15분은 걸려 가서 전에 챙겨둔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왔고, 남편도 다시 회사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왔다.

고요한 병원 첫날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세 번째 알약을 먹고 CTG 한 시간을 했다. 그래도 뭐 별 반응이 없자 병원 내 산책을 추천했고,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양수가 터졌다. 이제부턴 또 다른 단계다. 8시간에 한 번 씩 혈액검사를 하고, 4시간에 한 번 씩 항생제를 투여한다. B군연쇄상구균 때문이다. 이 역시 출산 한 달 전 보험회사에서 부담해서 진행하는 검사로, 양성반응이 나와서 양수가 터지고 난 후 부터는 항생제를 꾸준히 맞아야 한다. 양수는 터졌지만 통증은 거의 없다. 오후 세 시에 네 번째 알약을 먹고 저녁 아홉시에 다섯 번째 알약을 먹는다. 그러자 슬슬 진통다운 진통이 오기 시작한다.


독일의 분만시스템은 이렇다. 부인과 진료를 보러가는 부인과전문클리닉이 있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출산센터나 대형병원이 있다. 임신기간동안 체크를 받으러 다니는 산부인과는 사실 부인과이고, 그 곳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을 앞둔 부모들은 어디에서 출산을 할 지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선택해야한다.

슈투트가르트에는 큰 병원 네 곳, 그리고 그 외 몇몇 출산센터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이를 받을 수 있는 조산사를 집으로 불러 집에서 낳을 수도 있다.) 이 병원들에서는 정기적으로 인포아벤트Infoabend를 연다. 예비부모들을 상대로 병원의 출산 시스템, 철학, 자료, 입원실과 분만실까지 보여주고 질의응답을 하는 날이다. 여러 곳을 돌아보며 정보를 얻고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출산병원을 선택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집에서 버스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출산 가능한 병원이 있었다. 그래서 딱히 다른 옵션을 고려하지 않기도 했지만, 인포아벤트에 가서 보니 가히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단 독일 평균보다 자연분만율이 높았고, 병원측에서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건 분만실이었다. 총 세 개의 분만실이 있는데, 각 분만실은 세 개의 연결된 방으로 구성돼있었다. 가운데 가장 큰 방이 분만을 하는 방인데, 가운데는 침대나 굴욕의자가 아닌 변신하는 의자가 있었다. 출산에 가장 좋은 자세를 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단다. 오디오도 있어서 좋아하는 노래를 가지고 오면 틀어주기도 한다고. 연결된 방들은 각각 출산에 도움을 주는 방들 이었다. 왼쪽으로 연결 된 방에는 짐볼과 매트 등이 있었고, 오른쪽 방에는 수중분만이 가능한 욕조가 있었다.

이 모든것이 보험으로 처리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매일 입원비 10유로를 개인이 부담해야하고, 2인실 혹은 3인실이며, 보호자는 병원에서 같이 밤을 보낼 수 없다. 보호자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는 가족실의 경우 하루에 150유로를 개인 부담 해야한다. 신생아실은 없고, 아이는 출산 직후부터 엄마와 함께 있는것이 원칙이다.


진통이 오고 언제부턴가 나는 분만실에 누워있었다. 남편도 눈을 좀 붙이라고 입원실로 보내고, 출산준비수업에서 배운 호흡법을 좀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자정을 넘어서자 내 의지로 호흡법을 유지하는게 힘들어졌다. 간호사를 불러 남편을 불러달라고 했다. 열리는 문 뒤로 잠을 미처 다 떨쳐버리지 못한 남편의 얼굴이 보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멘탈이 나가는게 보였다. 그리고는 간호사에게 묻는걸 들었다.

"애가 지금 나오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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