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휴가가 지나갔다. 독일의 바덴뷔템베르크 주는 부활절 앞, 뒤의 금요일과 월요일이 공휴일이다. 부활절을 중심으로 두 주는 학교들이 쉬는 방학이다. 딸의 어린이집은 부활절 이후 한 주동안 방학이어서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냈다. 이 휴가는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는 지인 집으로 떠났던 3일. 휴양지 근처 가장 큰 도시이지만 정작 휴양지는 차타고 오가며 봤던게 다 였던. 지인집에서 죽치고 있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잘 쉬다 왔다.

긴 휴가 전 마지막 퇴근은 자리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파일 마무리도 제대로 못하고 하고, 뛰다시피 해서 원래 남편이 맡던 딸 픽업을 갔던 정도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에너지와 집중도를 여기저기에 분배했어야 했던 시간 끝에 휴가를 얻었다. 남편의 여러 부분이 못마땅 해 보이고, 남편도 나에게 나름의 서운함이 쌓였던 상황에서, 우리를 나름 오래 봐 온 사람들과의 애정어린 수다가 건조한 마음에 잔잔히 비를 내려줬다.

휴가의 중기는 미뤄뒀던 집안일을 처리하던 기간. 볕 좋은 날 이불빨래도 하고, 꽃집에서 흙을 사서 분갈이도 해 주었다. 이사 후 새 집에 몬스테라와 산세베리아를 들였었는데, 무섭게 뻗어나가는 몬스테라와는 다르게 산세베리아는 자라지도 않고 새순도 올라오지 않아 새 흙을 넣어줘야겠다 생각했었다. 선인장용 흙을 사서 갈아주고, 그 김에 알로에베라도 큰 화분에 옮겨주고, 수경재배중이던 몬스테라도 화분에 옮겨심었다. 남편 사무실에 놓을 스투키, 보스턴고사리, 알로카시아, 하율이가 고른 타라 , 스킨답서스, 디펜바키아도 들여왔다.

여름에 친정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열흘 여행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렌터카를 예약했다. 숙소까지 예약하는게 목표였는데 실패. 원래 일주일 생각했던 일정이 열흘로 늘어나는바람에 기존에 두 도시에서 묵으려고 했던 계획도 세 도시로 바꼈고, 어디에 얼마나 묵는게 좋은지도 새로 계획해야 했기에 바로 예약할 수 없었다.

후기는 소셜활동기간이자 진짜 쉬는시간. 딸을 재우면서 같이 잠이 들지 않았던 밤에 한국영화 네 편을 보고, 한참 거리를 뒀던 예능도 하나 보았다.

친구들도 만나 수다 가득한 걸스나잇 한 번과 걸스오후 한 번을 가졌다. 평소 친구들을 만나려면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아이와 함께여야한다. 풀타임 워킹맘은 퇴근 후 아이가 자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주중은 패스. 아이와 함께 만나면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고, 대화 집중도도 한참 떨어진다. 이러니 아이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휴가기간에 친구를 만나면 죄책감도 덜 들고 온전히 내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도 드니 일석이조. 한참 신나는 락을 들으며 기네스 생맥에 햄버거를 먹고, 자이언티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와 치즈케익을 먹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도 약속을 잡고 만났다. 아이는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는게 아니라 ‘어린이집 친구 = 동네 친구’가 아니다. 아직 친구들과 같이 놀 연령은 아니지만 공동육아는 언제나 독박육아보다 쉬우니까, 아이를 데려다주고 가끔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다른 아이 엄마와 이번 연휴에 한 번 보기로하고 번호를 교환했었다. 독일 사람들도 ‘다음에 봐’하고는 소식 없는 경우가 많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연락이 왔고, 동물들과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서 만났다.

평소에는 딸이 전혀 언급하지 않던 친구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웬걸. 만난다고 얘기한 후 부터 그 친구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고, 친구가 탄다며 안타는 유모차까지 선뜻 올라탐. 만나서도 친구가 하는건 똑같이 따라하고, 혼자 놀다가도 친구 어디갔냐며 찾고. 너무 잘 놀아줘서 고마운 마음과, 이런 시간을 자주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같이 가자며 떼쓰다가도, ‘네가 친구를 만난 것 처럼 엄마도 친구 만나고 올게’ 했더니 급 이해하고 볼에 뽀뽀도 해주며 인사했다.

긴 연휴 후 돌아온 월요일. 매일 아침 신나게 들어가던 어린이집에선 나에게 다시 살짝 안겨 엄마랑 있고싶다 찡찡하고, 한참 지지고 볶았던 남편에게서 오늘따라 보고싶다 연락오고, 나도 괜히 사진첩을 뒤적이는. 민들레는 민들레인 월요일.

새벽 네시에 아이가 깼다. 영아시절 보통 기상시간이긴 했다만... 오늘은 엉엉 울면서 추피를 찾는다. 아이가 울어도 꿈쩍않는 남편을 깨워 거실에서 추피 책을 가져오게했다. 다섯 권을 읽는 동안 잠이 다 달아나버린 아이와 함께, 네시 반 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요 며칠은 아침 스트레칭으로 시작했지만 오늘은 불가능하니 패스. 다음 스케줄은 식기세척기 정리다. 부엌에 가니, 어제 새 집 손님맞이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 아이는 조리대에 앉아 남은 과자를 먹고, 나는 그 아래서 깨끗해진 접시들을 옮긴다.

집들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어제는 아주 간소했다. 남편은 저녁 떡국을, 나는 간식 머핀을 맡았다. 오전에 아이와 구운 바나나 초코 머핀에 차와 커피를 마시고 거기에 뜨거운 물 몇 번, 그리고 버터링 쿠키를 추가했다.

지난 달 아이 생일에 어린이집에 보낼 레인보우 머핀을 만들 때 머핀믹스 몇 박스를 사왔었다. 시판 믹스를 기본으로 색소를 추가해 만들었었다. 마트에 있는 바닐라 머핀 믹스는 초코칩이 든 것 밖에 없었어서 집에 초코칩만 몇 봉지 남아있었다. 그 후로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아이와 초코 바나나머핀을 만들었다. 아이가 매일 한 입 만 먹고 남기는 냉장고에 보관중인 바나나들과 함께.

집에서 만든 머핀은 부푼게 유지되지 않고 폭신폭신하지 않은게 항상 문제다. 쫀득쫀득 한 식감도 뭐 나쁘진 않지만, 납작한 머핀은 예쁘지가 않잖아. 버터, 계란, 우유를 실온에도 놔둬보고, 가루류를 열심히 체 쳐 보기도 하고, 최대한 덜 저어보기도 했지만 딱히 차이점이 없었다. 베이킹파우더가 과하면 쓴 맛이 난다기에 그건 마지막 보루로 두었다가 어제 시도 해 보았다. 최소 세 개의 바나나가 필욘한데, 두 개 뿐이길래 설탕을 좀 더 넣었었다. 그게 쓴맛을 좀 덮어주길 바라며.

오븐에서 막 나온 머핀은 비주얼이 비슷하다. 노릇노릇 구워진 윗 면에 예쁘게 갈라진 노오란 틈이 보이는. 어제는 왠일로 식었는데도 많이 가라앉지 않았다. 손님이 오기 전에 아이와 남편과 앉아 두 개를 나눠 먹었는데, 속이 폭신폭신한게 아닌가! 나의 머핀 역사에 처음 있는 일. 속이 부드러우니
머핀 뚜껑이 바삭한게 더 두드러진다. “어떻게 한거야?” 남편이 물어본다. “나도 모르지... 다음번에도 바나나 두 개와 베이킹파우더 많이 레시피로 해 보긴 할게...”

머핀이 성공 한 덕분에 손님맞이 부담이 좀 줄었다. 그래도 집들이 선물, 아이에게 물려줄 옷을 바리바리 챙겨 오는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고모, 이모, 삼촌, 오빠가 놀러오니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손님이 가고 나서도 그 흥이 가라앉지 않아 어제 밤 늦게서야 잠이 들었고, 흐트러진 리듬 탓인지 그래서 이 새벽에 한 번 깬 것 같다.

과자를 먹고 아침을 먹겠다는 아이에게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줬는데, 몇 숟가락 먹더니 자러간단다. 쪽쪽이를 찾아 자는 아빠 옆으로 슬슬 간다. 다섯시 반. 혼자 자는가 싶더니 낑낑한다. 무릎에 눞혀 재운다. 깊게 잠든 것 같아 침대에 내려놓는다. 여섯시. 이렇게 한 주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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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는 10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선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모두 그렇다. 그저께 출근길에 막 문이 닫히려는 지하철을 잡으려 딸을 안고 뛰다가 열린 지하철 문 앞에서(착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문을 잡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말았다. (그 착한 누군가가 딸을 안고있던 내 오른팔도 잡아줘서 다행히 딸은 다치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에 살짝 내렸던 비에 맹인 안내 보도블럭이 미끄러워졌기때문 인 듯 했다. 오랫만에 쪽팔렸고, 무릎이 너무 아팠다. 오랫만에 양쪽 무릎에 타박상과 멍을 얻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지근거리에 지하철이 오는게 보여도, 조금만 열심히 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뛰지않고 8분을 기다려(마음먹고 천천히 걸어가면 뛰면 20초 걸릴 거리가 2분이 된다) 다음 걸 타겠다고. 그리고 오늘아침까지 이틀동안 두번 다 앞에 지하철이 오는걸 봤지만 뛰지 않았고, 8분을 기다렸고, 한 10분쯤 지각했다.

10분을 더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우선 국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간 후 지하철로 갈아탄다. 국철을 타러 역 에스컬레이터를 열심히 걸어 내려가는데, 저어기 국철 꽁무니가 보인다. 열심히 뛸까 하다 아침 교훈을 기억하고 슬슬 뛰는듯 걷다가 이내 포기. 눈 앞에서 하나를 보냈다. 어차피 이럴거 그냥 세상 여유로운 척 느긋하게 걸을껄. 사실 나는 이 역에 들어오는거 아무거나 타면 된다. 아마도 노선이 한 6개 쯤 있을거고 얘네들은 모두 다 한 개의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물론 국철이라 지하철만큼 자주 오지는 않지만 다음걸 타기위해 10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이다. 역시나 오늘도 2분이나 지났을까, 다음 국철이 들어온다.

나는 뛰지는 않을거지만 환승 거리를 최대한 단축하기위해, 맨 뒷 칸까지 최대한 걸어간다. 환승구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는 거니까 열심히는 걷지 않는다. 국철 역을 통과해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이건 무슨 내게 주시는 신의 시험인가. 내가 타야하는 지하철이 1분 후에 들어온단다. 이런 경우는 이미 승강장에 도착해 있기 마련이고, 오늘도 그랬다.

나는 뛴다. ‘퇴근 후 10분’을 지하철역에 서서 핸드폰이나하며 보내지 않기 위해 뛴다. 내 결심은 정말 하찮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열심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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