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써서 뭘 얻고 싶을까.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시민 이사장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이사장이기 전에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한 유시민은 참혹한 과거 한가운데서 살아내던 그의 삶 속에서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합수부 취조실에서, 도망다니던 반지하에서, 감금돼있던 독방에서, 맞지 않기위해, 돈을 벌기위해, 그 돈을 쓰기위해 글을 썼다. 그때만해도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 만큼 처절하게 글을 쓸 수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조금 내 처지를 동정 해 보자면, 워킹맘에 독일어도 꾸준히 해야하는 상황에서 글을 쓰는걸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 닥치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역사=외우는 것' 이라는 공식이 새기면서부터 소위 '역포자'가 되었다. 읽는것은 좋아했지만 역사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읽히지 않았다. 자연스레 독서 편식이 생겼다. 재미 위주의 소설책을 주로 찾았다. 줄곧 내가 원하던 책을 구입해주던 엄마는 어느순간부터 독서를 지지하지 않았다. 엄마의 화장대에 새 책을 숨겨놓고 상으로 한 권씩 꺼내주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신입생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진로를 고민할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검색과 읽기였다. 내가 주로 의지했던건 내 선에서 검색하거나 찾아 읽어서 얻는 정보였는데, 꼬꼬마의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도무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방송피디 되는법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피디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방법이 간략히 설명 돼 있고, 현직 피디들이 몇 마디 적은 책이었다. 당시 갓 입사한 신입사원 신분의 나영석피디의 글도 있었는데, 매우 쓰기 싫은데 선배가 시켜 억지로 적은 것 같은 느낌이었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든 생각이었다. 건축가가 되는 법에 대한 글을 쓰자. 당시 내 나이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가 되는 법'을 내 깜냥이 되는 선에서 쓰고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거기에 더해 요즘은 '독일 건축가가 되는 법'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은 건축가가 되는 법에 대해서도, 독일 건축가가 되는 법에 관한것도 아니다. 스파르타식 글쓰기 훈련은 더더욱 아니지만, 차분히 앉아 글을 쓰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나름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위해 글을 써야하는것도 아니지만,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가 된다. 둥둥 떠다니다 뜬금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에게 들러붙는 먼지같은 생각의 조각을 싹싹 그러모아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작업이다. Keep it simple. 살기위해 하는거다. '내'가 원하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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