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의 워킹맘이던 엄마는, 나의 공부를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챙기셨다. 중학교 1학년때는 국사 시험공부를 같이 했고, 어느때까지는 수학도 직접 가르쳐 주셨다. 직접 가르쳐 주기가 버거워 질 학년 쯤에는 문제집 양을 정하고 체크하셨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도 식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던 때, 아마 너무 양이 많아서 그랬던 듯 할머니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할머니도 선생님, 할아버지도 선생님, 엄마도 선생님이었던 탓(?)에 아무도 문제집을 푸는걸 뭐라 하지 않았던 환경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할머니가 엄마한테 한 소리 했던 것 같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시어머니에게 아이의 교육에 대해 한 소리 들을 때가 올까.

엄마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런 감정들은 나에게 이제는 다행히 지나간 감정이다. 요새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일이 챙길 수 있었을까하는 놀라운 마음이 든다. 물론 당연히 그 때, 그리고 지금도 한국 엄마의 필수 덕목이었겠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엄마랑 같이 맛집을 다녔을까, 같이 요리를 했을까, 같이 티비를 보며 깔깔댈 수 있었을까. 엄마와 나와의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는 좀 더 친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었을까. 그 어느 가정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니 이런 생각도 다 든다. 그렇게 혹여나 생겼을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아이가 하나임에도 나는 회사 일에, (76프로 정도는 남편이 하는)집안 일에, 육아에. 아이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남편과, 지금 같이 할 시간과 에너지는 정작 부재한다. 누가 이 짐 좀 덜어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 그러면 단정히 정리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 불가능하기에 꾹꾹 눌러만 놓았던 그 생각들이 울컥 쏟아지려 한다.

아이와 시간을 온전히 보내려는 것이 욕심일까. 지금도 내 피곤함에 아이와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한 구석에 있는데. 그것도 나의 조바심일까. 나와 너와 그와 우리의 밸런스를 위해서 나는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자유로워져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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