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독일어 공부를 한지 3일째다. 매우 뿌듯하다. 3일 연속 혼자 독일어 공부를 하다니!

독일에 사는 나에게 ‘독일어 공부하기’는 생각만으로도 지긋지긋한 관계다.동의어로 ‘운동해야지’, ‘살 빼야지’가 있다. 아무튼 그런 찝찝한 관계를 2020년엔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올 해 10월에 회사 재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2년짜리 말하자면 계약직이다. 그 2년이 2020년 9월이면 끝나고 10월이면 새로운 계약을 맺게된다. 별 일 없으면 정규직으로. 1년 좀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일 뿐 아니라 독일어도 많이 늘었다. 나는 잘 몰라도 이해하는 척을 잘 하고, 발음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어휘량이 적고, 엉망진창인 문법으로 말한다는거다. 물론 원어민이 아니니 문법을 다 맞게 얘기할 수 없다는건 안다. 두려워 하지 않고 말을 뱉어야 하는 것도 알고. 하지만 일 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느낌적인 느낌에 의지해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전혀 프로페셔널 하지 않다. 독일어로도 주장과 근거를 젠틀하게 제시하며 내 의견을 내고싶다구!
지금까지 해온 독일어 공부로 여기까지 왔다. 병원 예약 잡는게 두렵지 않고, 환자 대기실에서 오늘 할 말을 부랴부랴 독일어로 찾아보지 않는다. 7년 독일어 짬밥이면 이정도는 해야지 하는 정도. 건축주나 협력업체를 만나 회의다운 회의를 하려면 짬밥말고 다른게 필요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하듯 공부하자. 마냥 엉덩이를 붙이고 있자. 효율, 그딴건 잊어버리자. 지금까지 효율있는 독일어공부를 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으니, 이젠 엉덩이 힘으로 승부를 볼 때다. 아이를 재우고 꼭 다시 책상에 앉은지 3일째다. 첫 날은 앉아있던 두 시간 중 한시간 반은 집중해서 독일어를 봤다. 75% 승률. 둘째날은 두 시간 중 한 시간? 그래, 50%. 어제도 그 비슷하다. 핸드폰이 문제다. (나는 문제가 없다.) 단어를 찾으려고 핸드폰을 열면, 그 순간 어떤 단어를 찾으려고 했는지, 내가 하려고 했던게 뭔지,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군지 홀랑 잊는다. 그러고는 손가락이 향하는대로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뒤진다. 그러다 남편이 내는 부스럭 소리에 부리나케, 그러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는다. 아참, 단어 찾으려고 했었지! 그 단어가 어디있더라... 손으로 알파벳을 훑는다.

2020년 내가 선택한 독일어 공부법을 소개한다. 유튜브가 새해를 맞아 나에게 보여준 영어공부법 영상을 응용한거다.
1. 독일어 책을 하나 정한다. 신문기사도 좋지만, 찾는데 매 번 힘을 들이기 싫었다. 내가 정한 책은 한국에도 ‘이중언어 아이들의 도전’으로 번역된 책. 한글로 읽었는데 내용이 좋았다. 언어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인지되고 사용되는지 알 수 있다.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적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어 공부 뿐 아니라, 언어 공부를 효율적으로(또 나왔다, 효율...) 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2. 손으로 옮겨 쓴다. 노트를 길게 반으로 접고 그 왼쪽에다. 문장을 외워서 옮기면 내가 잘 모르는 문법이나 구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아직은 구문으로 끊어서 외워 옮기는 수준.
3. 노트 오른쪽에다 모르는 단어, 중요한 숙어, 문장구조 등을 적는다. 더 알고싶은 부분(예문이나 비교 단어 등)도 적어둔다.
4. 오늘 본 부분을 원어민인척 읽어본다.
5. 배운 단어를 활용해 작문도 하라는데, 이건 힘이 좀 더 드는 일이므로 일단 패스.


다음달이면 만 세 살이 되는 딸. 독일어와 한국어 둘 다 말한다. 그리고 두 언어의 전환이 놀랍다.
어제 저녁, 잠 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작다’라는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잘 때엔 아직 쪽쪽이를 무는데, 물고 말하면 당연히 알아듣기 어렵다. ‘잡다? 접다?’하고 되 물으니, 쪽쪽이를 손으로 빼서 들고는 ‘클라인klein 이라고오!’ 한다.
한국어는 일취월장이라 가끔은 ‘언제 이런 표현을 배웠지?’ 할 정도. 요새 새로 사용하는 말은 ‘~하거나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다. 며칠 전에 ‘밥을 먹든지 내려가 놀든지 둘 중 하나만 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는, 엄마아빠가 자기랑 안 놀고 둘이서 얘기할 때 써먹는다. ‘구슬 하고 놀거나, 말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 말 하겠다고 하는 대답은 당연히 안 통한다.
‘엄마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뭐 하고싶어?’ 같은 심도있는(?) 질문에 대답도 한다. 처음 물어봤을 땐 ‘혼자서 양치하고싶어’였는데, 이젠 ‘맥주 마시고 싶’다고.
집에서는 98% 한국어를 사용한다. 2%는 독일어인데, 장난으로 독일어를 가끔 사용하곤 한다. 주로 아이가 먼저 독일어로 말을 걸고, 나는 장단을 맞춰주는 정도. 내 독일어로는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않아 재미가 없는지 오래 가진 않는다.

딸을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여느때처럼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는 길.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있는데, 어떻게 그게 눈에 들어왔는지 모를일이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그들을 발견 한 일! 오늘은 흰 티셔츠에, 핑크색 테니스 스커트, 핑크색 발레슈즈를 똑같이, 똑.같.이 차려입은 금발의 할줌니 두 명을 발견했다. 예전 남편이랑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 봤었고, 오늘은 두 번째. 남편이랑 같이 봤을 때도 옷 부터 가방, 악세서리까지 두 분이 꼭 같은 옷에 같은 포니테일을 하고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띄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레 웃음 근육이 움직였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들은 연인이다! 남의 눈은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싶은 반짝반짝 빛나는 순수한 마음.

이렇게 빛나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빛을 내뿜고 다니는 이 나라, 이 도시에서 나는 무엇이 걱정되어 마음의 근심을 떨쳐내지 못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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