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유튭 얘기만 꺼내면 존대말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의도적으로 티스토리 로그인을 하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는게 왠지 죄책감이 들었고, 다른사람이 쓴 글을 본다는게 나의 못난 점을 깨달아 느끼게 하는 것 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유튜브를 하고싶었다. 그나마 간간이 쓰던 글을 중단하니, 어딘가에는 내 목소리를 내야 했던거 아닐까. 눈으로 한 자 한 자가 보이는 글 보다, 휙 지나가고 마는 말이 더 편하게 느껴진 건 아닐까. 요새 대세는 유튜븐데 나도 거기에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너도나도 개인 채널을 여니, 내 얼굴 하나 보이는 것 쯤이야 군중속에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하고싶어서 했다.

그리고 두 개의 동영상을 올리고, 이런저런 드는 생각은 역시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만년만에 로그인을 했다.

회사에서 단순작업을 하면서 유튜브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엔 노래로 시작했던것이 점점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채널로 옮겨갔다. 듣다보면 소리만 들리는 이야기도 있고, 문득 반짝하는 이야기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귀를 열어도 한 쪽 귀로 들어와 반대쪽 귀로 흘러 나가는 언어가 들리니, 어쨌든 모국어로 말하는 이어폰 속 사람의 목소리가 내 속에 들어왔다. 옛날 엄마가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 하던 그 마음이 이랬을까.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에 들어가는 목소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안정감 혹은 따뜻한 그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완벽주의자라기 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마감주의자인 나로써는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 영상에서 말할 구조만 어느정도 짜두는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 아, 그리고 퇴근 후, 세수하고 다시 화장하는게 좀 번거롭다.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야 영상을 촬영할 수 있으니까.

한 번 업로드 한 영상은 다시 보지 않는다. 한 번 발행 한 글은 다시 보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로. 편집하는 중에나 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는데, 요 근래에 이렇게나 나에게 집중한 시간이 있었나 싶다. 몰랐던 습관들도 알게되고, 긍정적인 피드백도 하게 된다.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데 좋은 자극이 된다.

유튜브를 통해 완전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게 내가 유튜브를 하고싶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나름 오랜 시간 외국에서 살면서 남편과,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인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사회, 문 밖으로 한 발짝만 내 딛으면 맞닥트리는 모국이 아닌데에 대한 긴장감까지. 너무 오랫동안 움츠리고 있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인다는데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한 번 해보니 별거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너도 나도 얼굴을 보이며 댓글로 얘기하는게 익명성의 대안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글이 아닌 제가 궁금하신 당신, 유튭에서 엄마건축가를 검색하면 아마 나올겁니다. 이렇게 존대말로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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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써서 뭘 얻고 싶을까.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시민 이사장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이사장이기 전에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한 유시민은 참혹한 과거 한가운데서 살아내던 그의 삶 속에서 ‘혹독한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합수부 취조실에서, 도망다니던 반지하에서, 감금돼있던 독방에서, 맞지 않기위해, 돈을 벌기위해, 그 돈을 쓰기위해 글을 썼다. 그때만해도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 만큼 처절하게 글을 쓸 수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조금 내 처지를 동정 해 보자면, 워킹맘에 독일어도 꾸준히 해야하는 상황에서 글을 쓰는걸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 닥치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역사=외우는 것' 이라는 공식이 새기면서부터 소위 '역포자'가 되었다. 읽는것은 좋아했지만 역사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읽히지 않았다. 자연스레 독서 편식이 생겼다. 재미 위주의 소설책을 주로 찾았다. 줄곧 내가 원하던 책을 구입해주던 엄마는 어느순간부터 독서를 지지하지 않았다. 엄마의 화장대에 새 책을 숨겨놓고 상으로 한 권씩 꺼내주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신입생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진로를 고민할 때 내가 할 수 있는건 검색과 읽기였다. 내가 주로 의지했던건 내 선에서 검색하거나 찾아 읽어서 얻는 정보였는데, 꼬꼬마의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도무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방송피디 되는법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피디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방법이 간략히 설명 돼 있고, 현직 피디들이 몇 마디 적은 책이었다. 당시 갓 입사한 신입사원 신분의 나영석피디의 글도 있었는데, 매우 쓰기 싫은데 선배가 시켜 억지로 적은 것 같은 느낌이었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든 생각이었다. 건축가가 되는 법에 대한 글을 쓰자. 당시 내 나이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가 되는 법'을 내 깜냥이 되는 선에서 쓰고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거기에 더해 요즘은 '독일 건축가가 되는 법'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은 건축가가 되는 법에 대해서도, 독일 건축가가 되는 법에 관한것도 아니다. 스파르타식 글쓰기 훈련은 더더욱 아니지만, 차분히 앉아 글을 쓰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 나름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위해 글을 써야하는것도 아니지만,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가 된다. 둥둥 떠다니다 뜬금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에게 들러붙는 먼지같은 생각의 조각을 싹싹 그러모아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작업이다. Keep it simple. 살기위해 하는거다. '내'가 원하는 삶을.

열흘 휴가가 지나갔다. 독일의 바덴뷔템베르크 주는 부활절 앞, 뒤의 금요일과 월요일이 공휴일이다. 부활절을 중심으로 두 주는 학교들이 쉬는 방학이다. 딸의 어린이집은 부활절 이후 한 주동안 방학이어서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냈다. 이 휴가는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는 지인 집으로 떠났던 3일. 휴양지 근처 가장 큰 도시이지만 정작 휴양지는 차타고 오가며 봤던게 다 였던. 지인집에서 죽치고 있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잘 쉬다 왔다.

긴 휴가 전 마지막 퇴근은 자리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파일 마무리도 제대로 못하고 하고, 뛰다시피 해서 원래 남편이 맡던 딸 픽업을 갔던 정도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에너지와 집중도를 여기저기에 분배했어야 했던 시간 끝에 휴가를 얻었다. 남편의 여러 부분이 못마땅 해 보이고, 남편도 나에게 나름의 서운함이 쌓였던 상황에서, 우리를 나름 오래 봐 온 사람들과의 애정어린 수다가 건조한 마음에 잔잔히 비를 내려줬다.

휴가의 중기는 미뤄뒀던 집안일을 처리하던 기간. 볕 좋은 날 이불빨래도 하고, 꽃집에서 흙을 사서 분갈이도 해 주었다. 이사 후 새 집에 몬스테라와 산세베리아를 들였었는데, 무섭게 뻗어나가는 몬스테라와는 다르게 산세베리아는 자라지도 않고 새순도 올라오지 않아 새 흙을 넣어줘야겠다 생각했었다. 선인장용 흙을 사서 갈아주고, 그 김에 알로에베라도 큰 화분에 옮겨주고, 수경재배중이던 몬스테라도 화분에 옮겨심었다. 남편 사무실에 놓을 스투키, 보스턴고사리, 알로카시아, 하율이가 고른 타라 , 스킨답서스, 디펜바키아도 들여왔다.

여름에 친정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열흘 여행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렌터카를 예약했다. 숙소까지 예약하는게 목표였는데 실패. 원래 일주일 생각했던 일정이 열흘로 늘어나는바람에 기존에 두 도시에서 묵으려고 했던 계획도 세 도시로 바꼈고, 어디에 얼마나 묵는게 좋은지도 새로 계획해야 했기에 바로 예약할 수 없었다.

후기는 소셜활동기간이자 진짜 쉬는시간. 딸을 재우면서 같이 잠이 들지 않았던 밤에 한국영화 네 편을 보고, 한참 거리를 뒀던 예능도 하나 보았다.

친구들도 만나 수다 가득한 걸스나잇 한 번과 걸스오후 한 번을 가졌다. 평소 친구들을 만나려면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아이와 함께여야한다. 풀타임 워킹맘은 퇴근 후 아이가 자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주중은 패스. 아이와 함께 만나면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고, 대화 집중도도 한참 떨어진다. 이러니 아이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휴가기간에 친구를 만나면 죄책감도 덜 들고 온전히 내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도 드니 일석이조. 한참 신나는 락을 들으며 기네스 생맥에 햄버거를 먹고, 자이언티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서 플랫화이트와 치즈케익을 먹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도 약속을 잡고 만났다. 아이는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는게 아니라 ‘어린이집 친구 = 동네 친구’가 아니다. 아직 친구들과 같이 놀 연령은 아니지만 공동육아는 언제나 독박육아보다 쉬우니까, 아이를 데려다주고 가끔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다른 아이 엄마와 이번 연휴에 한 번 보기로하고 번호를 교환했었다. 독일 사람들도 ‘다음에 봐’하고는 소식 없는 경우가 많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연락이 왔고, 동물들과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서 만났다.

평소에는 딸이 전혀 언급하지 않던 친구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웬걸. 만난다고 얘기한 후 부터 그 친구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고, 친구가 탄다며 안타는 유모차까지 선뜻 올라탐. 만나서도 친구가 하는건 똑같이 따라하고, 혼자 놀다가도 친구 어디갔냐며 찾고. 너무 잘 놀아줘서 고마운 마음과, 이런 시간을 자주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같이 가자며 떼쓰다가도, ‘네가 친구를 만난 것 처럼 엄마도 친구 만나고 올게’ 했더니 급 이해하고 볼에 뽀뽀도 해주며 인사했다.

긴 연휴 후 돌아온 월요일. 매일 아침 신나게 들어가던 어린이집에선 나에게 다시 살짝 안겨 엄마랑 있고싶다 찡찡하고, 한참 지지고 볶았던 남편에게서 오늘따라 보고싶다 연락오고, 나도 괜히 사진첩을 뒤적이는. 민들레는 민들레인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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