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리더기가 고장이났다.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에게 이미 열불을 토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21세기라는 말도 촌스러워진 2018년도에 배터리가 부풀어서 못 쓰는 이북이라니. 이 이북은, 조금 부풀려 얘기하자면, 자기 값 만큼의 국제배송비와 관세를 물며 바다를 건너 온 애다. 그래도 일년 반 동안 나에게 그 값어치를 해 주었다.


그런데 고장이나 한동안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이폰은 왠지 책 읽는 맛이 안나고, 가지고 있는 종이책은 당장 읽고 싶은게 없고. 이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는 컴퓨터로 읽은 나의 첫 이북이다. 예스24의 독자리뷰에 마음이 이렇게 동한적이 없는데, 이 책을 절대 사지 말라는, 어찌보면 상투적인 리뷰를 보고 구입을 누르며 생각했다. “독자들 리뷰 수준이 이정도면 믿을만 해.”



“‘나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 에세이를 쓰기 위한 첫 번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단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는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으니 너무 거부감 갖지 마시길.”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결과물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꺼려지는 것은 내가 즐겁게 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느꼈던 애매함들, 뭐가 좋을지 생각해보자 했던 것들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돼있다. 이 간결함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독자는 한참을 더 읽을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벌써 마무리라니!



"어떤 감정을 느꼈거나 기억에 남았던 것들에 주목하세요. 어떤 지점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면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 감정들을, 내 순간들을 더 소중히 보는 눈을 가지라고 무심하게 응원해주고,



“지금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 이것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 보다 늘 좋은 방법입니다.”


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 엄마도 성공하지 못했던걸 하게 하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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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등떠밀듯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커피를 내리다 문득, 커피향이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유리잔에 얼음 가득 넣고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마셨는데, 지금은 카페크레메를 내리고 있다. 노말 카페. 그러고보니 아침 메뉴가 홈메이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밀카 초코렛에서 카페 크레메와 버터쿠키로 바꼈네. 날씨가 선선해진게 여기서도 보이는구나.

한국 못지않게 덥던 날씨가 3주동안 지속되더니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아침저녁으론 꽤 서늘하다. 더위가 가시던 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에 오던 길. 집 앞 지하철 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밖으로 나와도 어두운게 아닌가. 해를 피하려고 아이 모자를 씌우는 중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람이 바람이! 모래먼지가 같이 날려서 눈은 게슴츠레하게 떠야했고, 아이를 감싸느라 정신없는 와중. 옆 카페 테이블에 놔둔 설탕병인지가 우르르 쿠당쿠당. 아, 이건 바람소리인가. 그래도 다행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겉옷 빨래를 발코니에 널어두지 않아서.

​아이구, 커피 다 식겠다. 난 그럼 이만 선선한 날씨를 즐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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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 들어가서 나에게 앉고싶은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이 사람,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앉으면 좋을 자리는 여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할텐데. 도데체 그 정답 자리는 어디냔 말이야. 동양적 수직관계 마인드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표현하지는 않지만 여기도 그런데 만만치 않게 깐깐하다는거. 면접 시작하기도 전에 내 마음이 편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퀘스트부터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 추가요.


스펙쌓기 용이 아니었는데. 이 나이 먹도록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게 한심해서, 학업에 지쳐서 잠시 쉬기 위해 했던 일이었는데. 학생아르바이트생으로 얼마동안, 그리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인턴증명서는 안 봐도 된다고. 내가 뭘 했는지, 나름의 추천사도, 여기에 아주 잘 써있는데. 내가 안한 일을 했다고 뻥치고 있는거면 어쩌려고.


그래도 적어도 계약서 쓰기 전에 공신력있는 증명서들은 봐야 하는거 아니야? 내가 여기 졸업했다고 뻥치는거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쯧쯧.


졸업작품은 그래서 맘에 드냐고 묻는 질문에는 정말 당황했다. 아니, 나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킬 사람으로써, 나를 어디에 써 먹을지 결정할 때 도움되는 질문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내 자존감까지 챙겨주시는 오지랖. 칭찬해.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내가 졸업작품 발표 하던 날에도, 오랫만에 만나는 독일 친구들은 그래서 만족하냐고 종종 물어보더랬다. 그 때야 끝나고 훌훌 털 수 있었으니 당연히 만족하지. 근데 사람이란 뒤돌아보면 후회하는 동물 아니었어? 나만 그렇니. 세상에 나온지 이제 반년 된 아이 데리고 졸업하는게 생각보다 쉬울리가. 목표를 졸업에 두고, 좀 눈에 밟히는 부분도 넘어갔는데. 그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해도, 다시 돌아가도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도, 그래도 어떻게 내 작품에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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