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는 10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선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모두 그렇다. 그저께 출근길에 막 문이 닫히려는 지하철을 잡으려 딸을 안고 뛰다가 열린 지하철 문 앞에서(착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문을 잡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말았다. (그 착한 누군가가 딸을 안고있던 내 오른팔도 잡아줘서 다행히 딸은 다치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에 살짝 내렸던 비에 맹인 안내 보도블럭이 미끄러워졌기때문 인 듯 했다. 오랫만에 쪽팔렸고, 무릎이 너무 아팠다. 오랫만에 양쪽 무릎에 타박상과 멍을 얻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지근거리에 지하철이 오는게 보여도, 조금만 열심히 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뛰지않고 8분을 기다려(마음먹고 천천히 걸어가면 뛰면 20초 걸릴 거리가 2분이 된다) 다음 걸 타겠다고. 그리고 오늘아침까지 이틀동안 두번 다 앞에 지하철이 오는걸 봤지만 뛰지 않았고, 8분을 기다렸고, 한 10분쯤 지각했다.

10분을 더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우선 국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간 후 지하철로 갈아탄다. 국철을 타러 역 에스컬레이터를 열심히 걸어 내려가는데, 저어기 국철 꽁무니가 보인다. 열심히 뛸까 하다 아침 교훈을 기억하고 슬슬 뛰는듯 걷다가 이내 포기. 눈 앞에서 하나를 보냈다. 어차피 이럴거 그냥 세상 여유로운 척 느긋하게 걸을껄. 사실 나는 이 역에 들어오는거 아무거나 타면 된다. 아마도 노선이 한 6개 쯤 있을거고 얘네들은 모두 다 한 개의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물론 국철이라 지하철만큼 자주 오지는 않지만 다음걸 타기위해 10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이다. 역시나 오늘도 2분이나 지났을까, 다음 국철이 들어온다.

나는 뛰지는 않을거지만 환승 거리를 최대한 단축하기위해, 맨 뒷 칸까지 최대한 걸어간다. 환승구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는 거니까 열심히는 걷지 않는다. 국철 역을 통과해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이건 무슨 내게 주시는 신의 시험인가. 내가 타야하는 지하철이 1분 후에 들어온단다. 이런 경우는 이미 승강장에 도착해 있기 마련이고, 오늘도 그랬다.

나는 뛴다. ‘퇴근 후 10분’을 지하철역에 서서 핸드폰이나하며 보내지 않기 위해 뛴다. 내 결심은 정말 하찮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열심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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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특히나 행복해지기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중에 내 딸에게, 행복한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얘기하는걸 상상한다. 그리고 그게 과연 옳은 행동일까도 생각한다. 진짜로 내가 행복한건 스스로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남과 잘 지내기위해 행복하려고 노력하는건 피곤하고, 또 결국엔 슬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하우에 대해 말을 아끼시는 편이다. 엄마에게는 중학교 1학년 때 국사 시험에 잘 대비하는 공부법을 흥미롭게 배운 기억이 있다(물론 그 때 뿐이었지만). 아빠는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한게 신기하게도 주로 기억에 남는데, 나는 머리만 쓰고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이다.
부모란 아무리 자식에게 말을 아껴도 잔소리하는 존재인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더욱 내 딸에게 무엇을 어떻게 얘기할지가 망설여진다. 네가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해야할까, 행복하기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할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되게 어려운 경지라고 얘기를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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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쉼과 내 시간에 대한 간절함만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옆에 그대로 누워서 소설만 주구장창 보았다.

처음 시작한 책은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두 번 연달아 보았다. 마지막 끝판왕을 깨는 부분은 한 번 더 보았다. 그 이후로도 스티그라르손의 밀레니엄시리즈 세 권(이 역시 끝판왕 한 번 더), 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나영석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여행기 부분은 빼고), 그리고 새 이북으로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종이책으로 독일 교육 두번 째 이야기를 읽었다.

그 와중에 웹툰도 많이 보았다. 루드비코의 들쥐, 운 김한석의 여의주, 정이리이리의 왕 그리고 황제를 새로, 배혜수의 쌍갑포차를 다시 시작했고 아주 재밌었다.

어쩌다보니 병실 침대에서도 읽었고, 남의집 쇼피에서도 읽었고, 양치질을 하면서도 읽었다. 그래도 이불 속에서 딸 아이의 머리카락 냄새를 가끔 맡으며 읽는게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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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깡 또르르또르똘똥똥. 불규칙한 워낭 소리를 내며 여나흔 마리의 흰 양들이 우리로 돌아간다. 어디서 흐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찬 계곡 물 소리도 들린다. 하긴 내가 있는 여기와 저기 양이 있는 곳 사이는 지척인 듯 보여도 바로 갈 수 없다.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있기 때문이다.

양들 뒷편으로는 곧이어 깎아지른 절벽이 시작된다. 내가 해발 1030미터에 있고, 저 절벽 꼭대기는 3970미터니까, 거의 3키로 가까이 절벽을 올라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1885년부터 이 절벽을 통해 정상에 도달하기를 시도하다 2010년까지 60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지금 아이거 북벽 Nordwand 건너편에 있다.

저 위엔 눈이 있는데 나는 방금 해를 가리기위해 차양을 내렸다. 맨발로 발코니에 나와있지만 기분좋게 시원하다. 가끔 들리는 여기 아래 길을 지나는 버스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비현실적인 자연 안에서 매우 열심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숙소는 그린델발트에서 차로 7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린델발트는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길목이고, 5년 전 우리는 융프라우요흐를 갔다왔다. 고로 무엇을 봐야한다는 부담감 하나 없이 여기 앉아 눈만 뜨고 있을 수 있는것이다. 산 중턱이라고해도 엄청 높을게 틀림없는 곳에 덩그러니, 하지만 유유히 앉아있는 저기 집 한 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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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 유학중에 임신을 했고, 부른 채로 수업을 들었고, 학기 막바지에 출산을 했다. 출산 후엔 교수님 미팅하러 유모차를 끌고 학교에 갔고, 아이가 학교 복도를 기어다니는 옆에서 졸업논문 발표를 했다. 모든게 계획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사실은 계획 거였다. 나는 아이와 나의 나이차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때가 괜찮은 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닥칠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없었을 .

식상하지만 사실이라 말하지 않고는 넘어갈 없는게, 많은 도움들이 있었기에 헤쳐나올 있었다. 가장 도움은 남편이었다. 물론 육아는 남편이 도와줘야 하는 아니라 같이해야 하는 거고, 내가 졸업할 있게 말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독일에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도움 없이 출산을 , 남편은 달의 육아휴직Elternzeit 냈다. 한국보다야 복지가 좋은 독일이지만, 그래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길게 내는건 그리 보편적이지는 않다. 특히 건축 설계분야에서는, 그리고 소규모 아뜰리에에서는 더더욱.

남편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했고, 나는 졸업설계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임신했던 학기에 시작했으나 중간에 포기했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호르몬에 대항해 이기지 못했고,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있던 날이면 아이에게 미안함이 든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다시 시작한 졸업설계의 목표는 만족할 결과가 아니라 졸업이었다. 학부 처럼 일을 새서 작업해놓고 발표 직전에 누구 들으라고 하는 투정이 아니라, 순도 100% 진심으로.

아이가 다행히 순했(과거형...)기에, 낮잠자는 때나 혼자 누워서 틈틈히, 그리고 남편이 퇴근한 저녁과 주말에 작업을 했다.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학기 중반쯤 모든 것에 허덕이며 지내던 중에 남편이 달콤한 얘기를 했다. 졸업 까지 금요일을 쉬겠다는거였다. 독일은 한국보다 휴가가 많다. 때가 졸업발표가 남은 시점이었던가, 수로 따지면 충분히 가능했다. 어차피 여름 휴가를 내도 어디로 놀러 가지도 못하는데. 하지만 건축설계분야는 또한 다른 독일 회사들에 비해 짜다. 소규모 아뜰리에에서는 더더욱.

남편은 마감 직전 일주일 휴가도 내서 힘을 모아주고 장렬히 회사로 복귀하셨다. 그로부터 한국으로 휴가를 가기 까지는 아이의 이유식과 나의 끼니도 담당하셨다. 한국에 가서 나는 처음으로 34 자유부인이 되었다. 그것도 아예 다른 땅으로 떠날 있는 자유를 가진 부인이자 엄마. 자유를 남편은 참으로 쿨하게 동의 주었다.

어제 남편은 12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 없이 아이와 둘이서만 보내는 밤은 처음이었다. 친구랑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회사 워크샵이라는데, 나는 쿨하게 보내주지 못했다. 당연하지. 이틀에 주말도 하루 있으니. , 남편은 짐도 안싸고 나와 아이가 먹을 파스타를 만들고 국을 끓였다. 남편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아이는 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이 컸던거다. 그동안 육아의 힘듦이 1이었다면, 남편이 없으니 2 같았는데, 체감상 1.4 정도 였다. 아이는 미열이 있었지만 놀고 먹고 쌌다. 그리고 나는 나에대한 기대치를 줄였다. 밥은 있는거 먹이고, 힘들다 싶으면 애쓰지 않고 유투브 베이비시터님을 모셔왔다. 밖에서 시간을 보낼곳도 재미나 교육을 따지지 않고, 닿는대로, 아이 하는대로 내버려뒀다. 쓰고나서 보니 완전 남편 육아방식이다.

이제 육아의 두려움은 남편에게로 옮겨갔다. 남편 , 이제 육아의 책임이 자기에게 넘어온다고 막판에 버릇 나쁘게 들이지 말란다. 하루 그렇게 한건데, 잔소리를 한다. 역지사지다. 있음 본격 역할 바꾸기가 다가오는데, 나는 남편의 성취를 위해 나의 시간과 체력을 그렇게 떼어줄 수가 없을 같다. 퇴근 진심이 가득 담긴 위로 혹은 용기의 말을 충분히 전하는거, 그건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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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등떠밀듯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커피를 내리다 문득, 커피향이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유리잔에 얼음 가득 넣고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마셨는데, 지금은 카페크레메를 내리고 있다. 노말 카페. 그러고보니 아침 메뉴가 홈메이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밀카 초코렛에서 카페 크레메와 버터쿠키로 바꼈네. 날씨가 선선해진게 여기서도 보이는구나.

한국 못지않게 덥던 날씨가 3주동안 지속되더니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아침저녁으론 꽤 서늘하다. 더위가 가시던 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집에 오던 길. 집 앞 지하철 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밖으로 나와도 어두운게 아닌가. 해를 피하려고 아이 모자를 씌우는 중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람이 바람이! 모래먼지가 같이 날려서 눈은 게슴츠레하게 떠야했고, 아이를 감싸느라 정신없는 와중. 옆 카페 테이블에 놔둔 설탕병인지가 우르르 쿠당쿠당. 아, 이건 바람소리인가. 그래도 다행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겉옷 빨래를 발코니에 널어두지 않아서.

​아이구, 커피 다 식겠다. 난 그럼 이만 선선한 날씨를 즐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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