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시에 아이가 깼다. 영아시절 보통 기상시간이긴 했다만... 오늘은 엉엉 울면서 추피를 찾는다. 아이가 울어도 꿈쩍않는 남편을 깨워 거실에서 추피 책을 가져오게했다. 다섯 권을 읽는 동안 잠이 다 달아나버린 아이와 함께, 네시 반 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요 며칠은 아침 스트레칭으로 시작했지만 오늘은 불가능하니 패스. 다음 스케줄은 식기세척기 정리다. 부엌에 가니, 어제 새 집 손님맞이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 아이는 조리대에 앉아 남은 과자를 먹고, 나는 그 아래서 깨끗해진 접시들을 옮긴다.

집들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어제는 아주 간소했다. 남편은 저녁 떡국을, 나는 간식 머핀을 맡았다. 오전에 아이와 구운 바나나 초코 머핀에 차와 커피를 마시고 거기에 뜨거운 물 몇 번, 그리고 버터링 쿠키를 추가했다.

지난 달 아이 생일에 어린이집에 보낼 레인보우 머핀을 만들 때 머핀믹스 몇 박스를 사왔었다. 시판 믹스를 기본으로 색소를 추가해 만들었었다. 마트에 있는 바닐라 머핀 믹스는 초코칩이 든 것 밖에 없었어서 집에 초코칩만 몇 봉지 남아있었다. 그 후로 주말에 시간이 나면 아이와 초코 바나나머핀을 만들었다. 아이가 매일 한 입 만 먹고 남기는 냉장고에 보관중인 바나나들과 함께.

집에서 만든 머핀은 부푼게 유지되지 않고 폭신폭신하지 않은게 항상 문제다. 쫀득쫀득 한 식감도 뭐 나쁘진 않지만, 납작한 머핀은 예쁘지가 않잖아. 버터, 계란, 우유를 실온에도 놔둬보고, 가루류를 열심히 체 쳐 보기도 하고, 최대한 덜 저어보기도 했지만 딱히 차이점이 없었다. 베이킹파우더가 과하면 쓴 맛이 난다기에 그건 마지막 보루로 두었다가 어제 시도 해 보았다. 최소 세 개의 바나나가 필욘한데, 두 개 뿐이길래 설탕을 좀 더 넣었었다. 그게 쓴맛을 좀 덮어주길 바라며.

오븐에서 막 나온 머핀은 비주얼이 비슷하다. 노릇노릇 구워진 윗 면에 예쁘게 갈라진 노오란 틈이 보이는. 어제는 왠일로 식었는데도 많이 가라앉지 않았다. 손님이 오기 전에 아이와 남편과 앉아 두 개를 나눠 먹었는데, 속이 폭신폭신한게 아닌가! 나의 머핀 역사에 처음 있는 일. 속이 부드러우니
머핀 뚜껑이 바삭한게 더 두드러진다. “어떻게 한거야?” 남편이 물어본다. “나도 모르지... 다음번에도 바나나 두 개와 베이킹파우더 많이 레시피로 해 보긴 할게...”

머핀이 성공 한 덕분에 손님맞이 부담이 좀 줄었다. 그래도 집들이 선물, 아이에게 물려줄 옷을 바리바리 챙겨 오는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고모, 이모, 삼촌, 오빠가 놀러오니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손님이 가고 나서도 그 흥이 가라앉지 않아 어제 밤 늦게서야 잠이 들었고, 흐트러진 리듬 탓인지 그래서 이 새벽에 한 번 깬 것 같다.

과자를 먹고 아침을 먹겠다는 아이에게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줬는데, 몇 숟가락 먹더니 자러간단다. 쪽쪽이를 찾아 자는 아빠 옆으로 슬슬 간다. 다섯시 반. 혼자 자는가 싶더니 낑낑한다. 무릎에 눞혀 재운다. 깊게 잠든 것 같아 침대에 내려놓는다. 여섯시. 이렇게 한 주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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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의 워킹맘이던 엄마는, 나의 공부를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챙기셨다. 중학교 1학년때는 국사 시험공부를 같이 했고, 어느때까지는 수학도 직접 가르쳐 주셨다. 직접 가르쳐 주기가 버거워 질 학년 쯤에는 문제집 양을 정하고 체크하셨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도 식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던 때, 아마 너무 양이 많아서 그랬던 듯 할머니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할머니도 선생님, 할아버지도 선생님, 엄마도 선생님이었던 탓(?)에 아무도 문제집을 푸는걸 뭐라 하지 않았던 환경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할머니가 엄마한테 한 소리 했던 것 같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시어머니에게 아이의 교육에 대해 한 소리 들을 때가 올까.

엄마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그런 감정들은 나에게 이제는 다행히 지나간 감정이다. 요새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일이 챙길 수 있었을까하는 놀라운 마음이 든다. 물론 당연히 그 때, 그리고 지금도 한국 엄마의 필수 덕목이었겠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엄마랑 같이 맛집을 다녔을까, 같이 요리를 했을까, 같이 티비를 보며 깔깔댈 수 있었을까. 엄마와 나와의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는 좀 더 친밀한 감정을 나눌 수 있었을까. 그 어느 가정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니 이런 생각도 다 든다. 그렇게 혹여나 생겼을 마음의 여유와 시간을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아이가 하나임에도 나는 회사 일에, (76프로 정도는 남편이 하는)집안 일에, 육아에. 아이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남편과, 지금 같이 할 시간과 에너지는 정작 부재한다. 누가 이 짐 좀 덜어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 그러면 단정히 정리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 불가능하기에 꾹꾹 눌러만 놓았던 그 생각들이 울컥 쏟아지려 한다.

아이와 시간을 온전히 보내려는 것이 욕심일까. 지금도 내 피곤함에 아이와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한 구석에 있는데. 그것도 나의 조바심일까. 나와 너와 그와 우리의 밸런스를 위해서 나는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자유로워져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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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는 10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선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모두 그렇다. 그저께 출근길에 막 문이 닫히려는 지하철을 잡으려 딸을 안고 뛰다가 열린 지하철 문 앞에서(착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문을 잡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말았다. (그 착한 누군가가 딸을 안고있던 내 오른팔도 잡아줘서 다행히 딸은 다치거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침에 살짝 내렸던 비에 맹인 안내 보도블럭이 미끄러워졌기때문 인 듯 했다. 오랫만에 쪽팔렸고, 무릎이 너무 아팠다. 오랫만에 양쪽 무릎에 타박상과 멍을 얻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지근거리에 지하철이 오는게 보여도, 조금만 열심히 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뛰지않고 8분을 기다려(마음먹고 천천히 걸어가면 뛰면 20초 걸릴 거리가 2분이 된다) 다음 걸 타겠다고. 그리고 오늘아침까지 이틀동안 두번 다 앞에 지하철이 오는걸 봤지만 뛰지 않았고, 8분을 기다렸고, 한 10분쯤 지각했다.

10분을 더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우선 국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간 후 지하철로 갈아탄다. 국철을 타러 역 에스컬레이터를 열심히 걸어 내려가는데, 저어기 국철 꽁무니가 보인다. 열심히 뛸까 하다 아침 교훈을 기억하고 슬슬 뛰는듯 걷다가 이내 포기. 눈 앞에서 하나를 보냈다. 어차피 이럴거 그냥 세상 여유로운 척 느긋하게 걸을껄. 사실 나는 이 역에 들어오는거 아무거나 타면 된다. 아마도 노선이 한 6개 쯤 있을거고 얘네들은 모두 다 한 개의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물론 국철이라 지하철만큼 자주 오지는 않지만 다음걸 타기위해 10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큼이다. 역시나 오늘도 2분이나 지났을까, 다음 국철이 들어온다.

나는 뛰지는 않을거지만 환승 거리를 최대한 단축하기위해, 맨 뒷 칸까지 최대한 걸어간다. 환승구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는 거니까 열심히는 걷지 않는다. 국철 역을 통과해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이건 무슨 내게 주시는 신의 시험인가. 내가 타야하는 지하철이 1분 후에 들어온단다. 이런 경우는 이미 승강장에 도착해 있기 마련이고, 오늘도 그랬다.

나는 뛴다. ‘퇴근 후 10분’을 지하철역에 서서 핸드폰이나하며 보내지 않기 위해 뛴다. 내 결심은 정말 하찮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열심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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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얼마나 좋은 데엠을 가졌던가! 꽤 넓은 면적에 물건들이 일정 규칙에 따라 잘 정리 돼 있었고 오픈플랜으로 한 눈에 꽤 많이 파악할 수 있었다. 아기용품에 대해 얘기하자면 할 말이 더 많다. 모든 브랜드의 모든 크기의 기저귀가 다양한 포장규격으로 구비 돼 있었다. 아기옷도 저렴이부터 유기농까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내복도 있어서 응아가 샌 긴급 상황에 바로 계산해 입힐 수 있었다. 아 맞다. 기저귀 가는 곳도 널찍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언제든 기저귀를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두 곳의 데엠에 어렵지않게 갈 수 있다. 새로 이사한 집 근처에서 걸어서 10분에 하나, 회사에서 집에 오는 전철역 근처에 하나. 하지만 둘 다 예전 데엠보다 좋은 점은 찾아볼 수 없다. 좁고, 정수기도 없고, 기저귀 가는데(는 이제 어차피 별 필요는 없지만)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사던 팸퍼스 베이비드라이 점보팩이 없다! 좀 더 비싼 팸퍼스 프리미엄은 점보팩만 들어와 있고, 베이비드라이는 일반팩만 있다. 사이즈에 따라 한 팩에 들어있는 개수가 다른데, 지금 쓰는 사이즈는 일반팩으로 사면 30개가 들었다. 30개. 누구 코에 붙이나. 딸래미 엉덩이에 붙이지.

어린이집에서 기저귀가 더 필요하다고 해서 이번엔 아마존에서 주문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주문 후 이틀이 지나도 배송조차 안돼서 취소하고 회사 근처 데엠에 갔다. 기저귀코너 앞에서 내 귀한 ‘퇴근 후 10분’을 소비하고 결국은 엉덩이에 붙일 일반팩 하나를 집어들었다. 기저귀 공급에 차질이 생겨 기저귀를 떼야 할 판.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꾸뻬씨의 배움 22, 그리고 23)

문제가 코 앞에 닥치면, 일상이 흔들리고, 관계도 위협받는다. 물론 모든 위기가 그렇듯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해 나가는 과정을 지나면 보통은 그 전보다 나아지겠지. 하지만 어쨌든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앞이 안보이고 깜깜한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배려 할 수는 더더욱 없는거다.
하지만 상대가 무엇을 먹을 때, 무엇에 대해 얘기할 때, 무엇을 하지 않을 때 행복한지 아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을 제공 해 줄 수 있는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리고 나를 희생하는 일인 것 많은 아니라, 사실은 나도 행복해 지는 일인거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다.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언제나 당신은 행복해야한다. (노승의 가르침)

어디까지나 행복을 선택 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을 때 해당되는 말. 어찌되었든, 모든게 완벽할 수는 없고 내 행복은 내가 선택하는 것.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꾸뻬씨의 배움 13)

내 스스로 쓸모 있다고 느끼는 것, 상대를 쓸모 있다고 느끼게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고, 상대에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내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혹은 최대의) 배려.


지루하지만은 않았던 자기계발서. 주인공인 꾸뻬와 마찬가지로 작가인 프랑수아 를로르도 정신과의사였다고. 그걸 알고나니 책이 뭔가 더 위트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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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특히나 행복해지기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중에 내 딸에게, 행복한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얘기하는걸 상상한다. 그리고 그게 과연 옳은 행동일까도 생각한다. 진짜로 내가 행복한건 스스로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남과 잘 지내기위해 행복하려고 노력하는건 피곤하고, 또 결국엔 슬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하우에 대해 말을 아끼시는 편이다. 엄마에게는 중학교 1학년 때 국사 시험에 잘 대비하는 공부법을 흥미롭게 배운 기억이 있다(물론 그 때 뿐이었지만). 아빠는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한게 신기하게도 주로 기억에 남는데, 나는 머리만 쓰고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이다.
부모란 아무리 자식에게 말을 아껴도 잔소리하는 존재인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더욱 내 딸에게 무엇을 어떻게 얘기할지가 망설여진다. 네가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해야할까, 행복하기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할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되게 어려운 경지라고 얘기를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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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의 포스팅이에요. 그동안 남편의 사무실 개업 템포도 살짝 느려져 있었습니다. 11월은 자잘한 일 처리하다 지나가고, 12월은 지금까지 있던 회사 일을 정리하고 마무리 하느라 지나갔어요. 12월 20일부터 새 해 첫째 주 까지는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는 여기 문화도 속도를 늦추는데 한 몫 했구요.

오늘은 앞서 언급한 '자잘한 일' 가운데 하나인, 잡센터Arbeitsagentur에서 지원금Zuschuss 받기를 개략적으로 적어볼까 해요.

남편은, 본인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저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잔소리는 금전적인 부담감에서 대부분 기인 할 테기에,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처음에 목표로 했던건 창업지원금Zuschuss für die Selbstständigkeit이었어요. 잡센터에 가서 개인적인 이유로 창업을 하고싶고, 지원금을 받고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첫 상담을 잡아줬습니다. 첫 상담은 약간 어이없게 마무리 됐는데, 결론적으로는 1)창업지원금을 받으려면 실업급여Arbeitslosengeld 신청을 먼저 해야한다 2)나는 실업급여 담당이니 창업지원금 담당하는 사람과의 상담을 다시 잡아주겠다 였어요. 인터넷으로 실업자 등록을 하고 두번 째 상담을 받습니다.

창업지원금 담당자의 말은 이렇습니다. 지금 독일(혹은 여기 슈투트가르트)의 건축경기가 호황이다. 이 말인 즉, 취업이 정말 어려워 차선으로 창업을 선택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원금 신청도 신청을 한다고 모두가 받는것도 아니다. 실업인 상태로 최소 3개월동안 구직을 열심히 했는데도 취직이 안됐을 경우에 신청 가능하고, 실제로 5개월정도 구직을 권장한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인데, 지원금에 대한 사전조사 없이 막연히 받을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충격이 컸었어요. 상담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제 회사에 찾아와 손을 잡고 못받게 됐다고, 눈 꼬리를 한 껏 내리며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또 며칠은 희망을 접고 있었는데, 남편이 실업급여 대기시간을 줄일 방법이 있다고 얘기했어요. 남편은 전 회사에서 제 발로 나왔기 때문에 퇴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요. 해고를 당하는 등 본인의 의지로 퇴사한게 아니면 바로 받을 수 있구요. 위에서 언급한 '5개월 후 창업지원금 신청 가능'도 이 맥락에서 나온 기간입니다. 실업급여 대신 창업지원금으로 대체해서 받을래? 인거죠. 창업지원금이 실업급여보다는 적다고 하니, 정부 입장에서는 이득이라서 그런가봐요. 어쨌든, 그 방법이라는건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얘기하는거래요.

처음 잡센터에 갔을 때 육아때문에 퇴직하는거냐고 물어봤었대요. 그 때는 그렇다고 얘기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얘기하는게 좋았던거에요. 또 한번 잡센터로 가서 사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어요. 아내가 학업중에 아이를 낳아 학업과 육아를 병행했고, 졸업후에도 1년 쉬고 이제야 일을 할 수 있게돼서 이번엔 자기가 아이를 주로 양육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보려 구구절절하게 적어 냈다고 하더라구요. 그 정성에 감복한건지, 그로부터 며칠 후 내달부터 바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메일이 도착했어요.

마냥 좋아하기도 잠시, 또 몇일이 지나고 메일이 하나 더 왔어요. 내달 21일까지 그동안 구직활동 한 걸 정리해서 보내라는 일종의 숙제검사 날짜가 떨어진거에요. 글로는 한숨에 읽히지만, 사실 '실업자 등록'부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기까지 약 두 달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 사이 남편은 잡센터로부터 꽤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러이러한 사무실에 지금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지원해보렴이 주 내용이구요.

그리고 지금 그 '내 달'의 3일 째가 지나고 있어요. 이번달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지원금 신청이 가능 해 질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남편이 미래에 대한 희망만 보고 들떠있는건 아니라는걸 알게돼서 제 마음이 차분해지는건 사실이에요. 

글을 쓸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쉼과 내 시간에 대한 간절함만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옆에 그대로 누워서 소설만 주구장창 보았다.

처음 시작한 책은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두 번 연달아 보았다. 마지막 끝판왕을 깨는 부분은 한 번 더 보았다. 그 이후로도 스티그라르손의 밀레니엄시리즈 세 권(이 역시 끝판왕 한 번 더), 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나영석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여행기 부분은 빼고), 그리고 새 이북으로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종이책으로 독일 교육 두번 째 이야기를 읽었다.

그 와중에 웹툰도 많이 보았다. 루드비코의 들쥐, 운 김한석의 여의주, 정이리이리의 왕 그리고 황제를 새로, 배혜수의 쌍갑포차를 다시 시작했고 아주 재밌었다.

어쩌다보니 병실 침대에서도 읽었고, 남의집 쇼피에서도 읽었고, 양치질을 하면서도 읽었다. 그래도 이불 속에서 딸 아이의 머리카락 냄새를 가끔 맡으며 읽는게 가장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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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세 명의 건축가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 입니다. 독일의 전후 모더니즘 건축가로 제가 살고있는 슈투트가르트의 IBM 본사 건물을 설계했어요. 더 유명한 건물로는 베를린에 카이저빌헬름교회가 있습니다. 오래된 성당 바로 옆에 유리블록으로 된 육각형 타워형 건물이 있는거요. 빛이 통과해 들어오면서 파랗게 된 유리블록 배경에 예수님 상이 있는 실내 사진, 그거요.
에곤 아이어만은 동시에 가구디자인으로도 유명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시리즈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가구 또한 그의 건축 못지않게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면서도, 기능적이죠. (건축가 O.M. 웅거스의 선생님이었기도 합니다.)

둘째는, 제 남편입니다. 새로 임대한 사무실에 에곤 아이어만의 책상과 의자를 들여놓고 싶어하죠. 책상은 쉐어오피스의 주인이 가져다주기로 하고, 의자를 고릅니다. 공략하는 모델은 S 197 R 입니다. 엉덩이 쿠션도 없고, 팔걸이도 없습니다만 가격은 뭐가 좀 있네요.
다른 의자들은 썩 눈에 들어오지 않나봅니다. 결국 중고거래사이트에서 괜찮은걸 하나 찾아 의자를 보러가기로 합니다.

셋째는, 의자 주인 할아버지입니다. 의자를 찾아 간 집은 꽤 좋은 동네에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여러 건축적인 디테일들이 보입니다. 좀 아는체를 하니 주인 할아버지가 자기가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개인 서재 겸 작업실도 집 안에 있습니다.
의자는 자기 아들을 위해 샀던건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건축가의 응원과 함께 의자를 업어옵니다. 뭔가 지혜를 전달받는 느낌적인 느낌도 듭니다.

비어있던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들어오니, 자리가 벌써 그럴듯 해 보입니다. 혹은 그런 뿌듯한 마음이거나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 꼬박을 끙끙 앓았다. 몸이 으슬으슬 아파 열을 재보니 39도다. 어제 처방받은 약은 기침 가래, 코감기 약 뿐이라 몸살약이 없는데... 남편이 부랴부랴 어디선가 소염진통제를 찾아준다.

출근 후 한 달이 지나고 맞은 주말을, 나는 이렇게 앓으며 보냈다. 기특하게도 딸은 엄마가 아프다 하니 많이 찾거나 보채지 않는다. 덕분에 뜨문뜨문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사실은 주중엔 멀쩡하고 주말이 되니 아프기 시작한건 아니다. 이번 주 시작인 월요일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 종합감기약 이틀 정도 먹으면 낫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 걸, 콧물이 점점 심해지고 기침도 하기 시작하더니 간 것 같던 몸살이 다시 왔다. 일주일 내내 없는 체력 갉아먹으며 병원균과 싸우다가 주말이 되자, 땡땡땡. 감기 바이러스, 승!

금요일 아침에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일어나자마자 영양제를 입에 털어넣었는데, 그게 또 체했네. 물과 약을 다 토했다. 오늘은 나 진짜 회사 못간다, 남편에게 선언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잤다. 한 시간쯤 잤을까. 일어나보니 남편과 아이는 둘이서 출근과 등원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 한 잠 자니까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겠어서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독일 회사도 병가가 있다. 그리고 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의사한테서 소견서를 받으면 의사가 써 준 만큼 쉴 수 있다. 소견서를 회사에 제출하면 의료보험회사가 아파서 출근하지 못 한 날들의 임금의 반을 지원한다. 하루 정도 쉬면 괜찮아질 것 같을 땐 소견서 없이 회사에 얘기하면 병가로 인정 해 준다. (물론 일 수 제한은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미련하게 병가를 쓰지 않는가!


아프던 중, 수요일 저녁 여섯시에 미팅이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의 건축주와 같이 하는 미팅이었다. 저녁 여섯시에 잡혔는지라 팀장이 물어봤다. 참석 할 수 있냐고. (참 쿨한 회사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대신 오후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세 시간 정도. 그랬더니 어딜가냐, 왜 가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러라고 한다. (회사 하나는 잘 뒀다)

같이 프로젝트를 준비 한 동료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오후 세시에 갔다가 다섯시 쯤 오겠다고 했더니, 어차피 건축주들은 늦는다며 다섯시 반까지만 와도 괜찮단다. 세 시 전에 미팅 준비를 같이 끝내기로 했지만, 설계일이 어디 두부썰듯 깔끔하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던가. 동료가 자기 맡은 일이 좀 더 걸리니 내가 준비할 수 있는것만 해 놓고 다녀오란다.

그리고 나는 아이 어린이집에 갔다. 전날 저녁 늦게까지 남편이랑 만든 등을 들고. 가을 등 축제를 하는 날 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적어져서 그런가, 처음 어린이집 등원할 때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 며칠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서 안들어간다고 엉엉 울면서 영화를 찍는다. 그렇게 우는 채로 선생님에게 안겨 들어가는 모습으로 안녕해서, 저녁 밥 먹기 전에 얼굴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어린이집에 오다니! 아이 반으로 들어가니 그 마음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같이 노래 부르고, 부모들이 싸온 음식을 먹고, 밖에 나가 등을 들고 한바퀴 돈다. 얼마 같이 놀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다시 일하러 간다고 한다. 남편은 울기 시작하는 아이의 정신을 트램폴린으로 돌리고, 나는 다시 회사로 가는 버스를 탄다.


이렇게 내가 필요한 시간은 시간대로 챙기고, 지난주에는 아이가 아파서 이미 하루 출근을 안했는데, 아파서 못가겠다고 또 얘기 할 염치가 없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얘기 할 수가 없어ㅠ

그런 몸 상태로 출근을 하니, 하루 종일 두통과 콧물과 기침과 싸우느라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코 풀러 화장실 가랴, 마실 물 끓이러 갔다오랴. 그래도 주말이 지나니 체력의 한 65프로 정도는 회복이 된 것 같다. 이제 뇌에 보낼 에너지가 좀 생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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